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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대숲에 가면
  • 입상자명 : 김대희
  • 입상회차 : 12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학교에서 생태동아리 소속으로 태화강대공원을 찾은 적이 있다. 동아리 포트폴리오를 채우기 위해서 갔던 길이라 재미는 없었다. 땡볕이 내리쬐어 눈을 차마 뜰 수 없어서 오히려 괴롭고 힘들었다. 이런 중에 천막 아래서 해설사를 만난 것은 청량제였다. 날씨는 더운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들은 설명은 힘들다는 생각까지 잊게 했다.
태화강대공원의 명물은 대나무 숲이다. 다른 지역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대나무 숲과 달리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대나무가 음이온을 방출한다는 안내문 덕분일까? 방문객 수는 휴일이나 평일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안내문의 내용은 사실인 듯했다. 10분가량 땡볕 아래 있다가 대나무 그늘로 들어서니 서늘했다. 그 서늘한 느낌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했다. 자칫 지겨울 수도 있는 설명을 2시간 넘게 들어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전부 대나무 숲의 생태에 대한 설명이었다.
대나무는 음이온을 방출한다. 시원한 공기를 내뿜어서 머리를 맑게 해준다. 해설사는 산소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때문에 대나무 숲을 자주 찾으라고 했다. 두뇌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청소년들이 산책하러 나오면 특히 좋은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얻었다.
산책로 가운데 너구리 집이 있었다. 너구리가 대나무 숲에 살아서 중간 지점에 대나무 집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대나무 줄기를 엮어 정글짐도 만들어놓았다. 아침에 산책하는 중에 너구리를 보았다며 찍은 사진도 보여주셨다. 외모가 귀여워서 볼에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 너구리 말고도 귀여운 동물들이 거주하는 숲은 태고의 원시림처럼 느껴졌다.
더욱 신기한 것은 죽순들이었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대나무 사이사이에 블록 표시라도 해놓은 것처럼 죽순이 솟아 있었다. 원뿔 모양에 옥수수 잎처럼 생긴 갈색 껍질로 둘러싸인 것이 죽순이라니 신기하기만 했다.
죽순의 크기는 다양했다. 발목까지 오는 것도 있었고, 어느새 쑥 자란 우량아 같은 죽순도 많았다. 주변에는 데커레이션을 해놓은 듯 영양제가 뿌려져 있었다. 나무들도 영양제를 먹는구나, 하는 사실도 새삼스러웠다. 이렇듯 정성을 쏟으며 가꾸는 사람이 있는 걸 모르고 즐기는 것조차 성가시고 귀찮게 여긴 것은 부끄러웠다. 죽순이 자라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재미였다. 마지못해 나선 길이라 재미가 없다고 느꼈던 생각은 대숲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다.
아침에만 해도 몹시 피곤했다. 이른 시각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 날씨가 더운데 굳이 산책로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피곤했다. 대숲에 들어서기 전까지 걸었던 강변에 쏟아지던 햇살에는 짜증까지 났다. 걸으면서도 저절로 눈이 감겼다.
이즈음 나는 잠이 부쩍 많아진 걸 느꼈다. 그런 상태에서 대나무 숲에 입장했는데 눈이 밝아졌다. 지쳤다고 생각했던 마음에도 새로운 활력소가 생겼다. 보지 못했던 식물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그렇게나 호기심이 많았던가,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느낌이었다. 낯섦이 아니라 신선함이었다. 그런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니 지금까지 무심코 스쳐 보아왔던 풀잎이 색채 하나도 색달랐다. 새는 아래를 보고 뱀은 위를 보며 긴다. 이런 내 맘을 아셨을까, 해설사가 새의 눈으로 길을 걸어보라며 거울을 주셨다. 거울을 눈에 대고 앞뒤를 바꿔 보니 내가 마치 새가 되었다가 뱀이 되었다가 하는 것 같았다.
자그마한 것에 의미를 부여해 보니 커다란 보물이었다. 진귀한 보물인 태화강 공원은 아파트 단지가 될 뻔했다. 한 아파트 업체가 현재 태화강대공원이 있는 자리에 아파트를 건설하려고 했다. 하마터면 이렇듯 아름다운 숲이 다 깎일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태화강 주변은 강물이 사철 흘러 아파트가 위치할 최상의 공간이라고 한다. 대숲을 벗어난 강변으로 주상복합아파트들이 들어선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렇지만 이곳만은 내줄 수가 없었단다. 울산의 허파인 대숲만은 지키려고 동네 주민과 구청이 건설회사의 계획을 저지하여 태화강대공원을 지켜냈다고 한다. 새삼 무척 고맙다.
태화강대공원의 존재 가치는 대숲 덕분에 더 소중해진다. 소중한 나무 한 그루가 모여 숲이 되었다. 어떤 나무 한 그루도 서로 돋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가 어울림을 아는 나무들. 비슷한 굵기와 크기로 자란 대나무들이 이제는 말없이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이 된 듯한 대숲. 그곳에는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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