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입선 실새삼과 딸기나무
  • 입상자명 : 채정순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삽상한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는 푸나무의 몸짓에 가슴이 조금 트인다. 삶의 격랑을 만날 때마다 산을 찾았다고 무의식이 발로해 오늘도 꾸역꾸역 산으로 향했다. 산이 성경이나 성전 못지않은 간접 계시물을 접하게 해주어서다. 낡은 슬리퍼에 헐렁한 원피스 차림으로 적막한 가풀막에 섰다. 부치는 힘이 숨을 차올린 탓인지 지다위를 당한 나무처럼 골골댄다. 저만치 따비밭 울타리가 간난 아기의 인분을 풀어놓은 듯 샛노랗다. 수년째 취직시험에 미역국을 먹은 아들의 소식에 아득하게 내려오던 하늘빛 같다. 투영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아들이 눈에 밟혀 허적허적 내닫는다. 울타리엔 실새삼이 머리카락을 올올이 풀어헤치고 소리 없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여릿여릿 기어 숙주를 옭아매는 실새삼의 해코지에 가슴자리가 아릿해져온다. 근원도 없는 소문에 현혹되어 어줍은 의견을 아들에 관철시켜 곤궁에 빠뜨리는 내 모습 같다. 제 소신껏 하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진작 사회 어딘가에 적을 두었기에 뿌리 깊은 회한이 밀려온다. 키가 두 자 정도 자라는 실새삼은 이름 그대로 실처럼 가느다랗게 생긴 한 해살이 덩굴풀이다. 씨가 땅에서 발아하여 뿌리와 잎을 내지만 기주에 붙고 나서는 뿌리와 잎은 흔적도 없고 오로지 가는 몸만 빼 올리며 흡판으로 기주의 양분을 빨아먹는다. 손갈고리를 만들어 황폐해지는 가장자리를 시작으로 석회를 잡듯 실새삼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엉킨 노란 머리카락에 눌려 맥도 추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산딸기나무다. 아들이 대학교 입학 원서를 제 실력에 맞춰 내놓은 걸 신중하지 못한 내가 다른 학교로 돌려 쓴 고배를 마시게 했다. 딸과 두 질녀들로 인해 내리 삼 년 갈고 닦은 노하우라 자신했는데 입시의 잣대를 착오한 것이다. 그리고 처음 취직시험을 치려 할 때에도 이미 출세의 가도를 달리는 친척이 있어 주위에서 그의 덕을 볼 것이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그 회사로 방향을 틀게 했다. 쏟아져버린 물이 되고서야 요즘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과 친척의 출세 비결이 청렴결백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한 마디로 취업의 문턱이 그렇게 높은 줄을 짐작 못한 나의 미욱함 탓이다. 이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돌이킬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진다. 멀리 깊게 볼 줄 모르고 보이는 것만 보는 아둔함이 일을 그르쳤다. 실새삼의 연약한 줄기가 거미줄처럼 쉽게 당겨 올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완강하다. 아득한 욕망에 사로잡힌 나의 아집 같아 자못 당황스럽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지만 매사 여과 없이 처리하는 경박한 성격 또한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들에게 튼실한 뿌리가 되어주지 못할망정 험한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셈이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며 긴 숨을 토하는 산딸기나무는 난만한 실새삼 밑에서 잎이 해사하고 찢긴 우중에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는 흔적이 보인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사계절에 붙박여 최선을 다하는 자태가 놀랍고도 측은하다. 산은 신이 인간 세상과 똑같은 세상을 하나 더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네 삶을 반영한다. 땔나무를 산에서 조달해 땅이 척박할 때 많았던 산딸기나무는 지금은 큰키나무에게 자리를 내주고 겨우 구색만 남았다. 이 같은 작은키나무들은 적은 햇볕으로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모습이 그 당시에 많았던 마음을 비우고 단순작업을 하며 사는 소박한 인생을 연상시킨다. 새삼 주위에 있는 상수리나무의 자태가 돋보인다. 실새삼에 자유로운 큰키나무여서다. 설혹 실새삼의 생장점이 상수리나무의 억센 줄기에 붇는다 해도 쇠등에 파리 붙은 격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참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서 서로 햇볕을 보려고 깨끼발을 하느라 야단이다. 제 밥그릇을 차지하려고 발버둥치는 아들 또래 젊은이를 보는 듯하다. 저들에게서 굳은 의지는 운명도 비껴간다는 말을 떠올린다. 우듬지에 실새삼이 아기자기한 핀처럼 하얀 꽃과 종 모양의 씨를 앙증맞게 달고 있다. 어쩜 아들이 수렁에서 허덕이는 줄 모르고 나 홀로 저런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키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콩은 남의 밥 것이 커 보이고 자식은 제 자식이 굵어 보인다고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여태 한 번 어미 속을 썩인 일이 없고 대학교 때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는 성실함을 갖춘 아이라 번개를 두려워 할 정도의 거목감인 줄 착각했을 수도 있다. 실새삼과 산딸기나무를 접하는 순간 아들의 인생 밭에 서슴없이 뛰어든 이유가 선연히 얼굴을 내밀었다. 넓은 잎을 흔들며 키를 키워 하늘 한 조각 차지할 재목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고생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생각하니 대상을 알 수 없는 울분이 지긋이 일어난다. 시대와 사회를 향해 들이밀었던 마음의 종주먹이 또한 질세라 슬며시 고개를 든다. 높새바람을 타고 실새삼의 덩굴손이 수십 미터나 내리 뻗는다. 실새삼 밭을 없애는 지금 더 이상 영토는 곤란하다. 겨우 들어간 공기와 햇살로 산딸기나무가 생기를 찾았는데 다시 엉겨 붙으면 고사할 일만 남았다. 아들의 눈빛에 가득한 소외감도 나의 반성과 성찰을 계기로 걷어져야 한다. 여지 꾼 꿈들의 색이 바랄지라도 이 부산물은 삶의 에너지를 감소시키는 속성이 있어 퇴치해야 한다. 여북하면 내가 못살지라도 원망의 소리가 그리웠을까 아들이 비록 작은키나무로 그친다 해도 할 수가 없다. 적막강산에 어정거리다보니 빽빽이 들어선 큰키나무들은 시들어가면서도 키만 키우는 것이 많이 보인다. 그럴 바엔 봄 햇볕으로 열매까지 맺은 작은키나무가 오히려 좋아 보인다. 신에게 영광을 돌릴 결실을 맺는 본능에 충실하니까. 녹음이 짙을 때 큰키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용을 쓰지만 이들은 소슬바람에 사근사근 춤만 추면된다. 불청객인 실새삼만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들의 유유자적함이 부럽기도 하다. 실새삼 때문에 아직 열매를 익히지 못한 산딸기나무가 바빠질 것 같다. 머리 위의 산봉우리가 오라고 손짓하지만 잘레잘레 도리머리가 된다. 바람 앞에 마릴린 먼로는 저리가라는 옷차림으론 무리여서다. 내 손 보자기에는 어느새 노란 머리카락이 넘쳐나지만 부모란 이름으로 깊숙이 들어간 내안의 모든 실새삼을 걷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실새삼은 허리병에 즉효라 즙을 내어먹기 위해 가져가야겠다. 아까부터 감정도 혼도 다 뺏겨 허연 얼굴로 나만 단호하게 따라 걷는 낮달을 데리고 터덜터덜 내려온다. 이름 모를 산새와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발자국을 재촉한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