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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곶자왈
  • 입상자명 : 정영숙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원시림처럼 느껴지는 곶자왈은 제주 여행의 백미다. 무질서 속에서도 공존의 의미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숲이 사람들의 지친 심신을 치유해 주고 있다. 곶자왈은 원시림을 의미하는 방언으로 숲을 뜻하는 '곶'과 덤불이 우거진 '자왈'의 결합어다. 지천명을 지난 여인들이 호젓하고 외진 길을 선택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느리게 천천히'라는 말이 화두처럼 떠오른 세태가 반영되기도 했지만, 쉬엄쉬엄 걸으면서 바쁘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무엇이든지 열정 넘치던 나이를 지나버렸다는 것도 곶자왈로 정하는데 한몫했다. 푸른 마늘밭이 넓게 펼쳐진 들길을 지나 무릉곶자왈 초입에 이르렀을 때는 동쪽 하늘이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숲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안개비가 낮게 깔리나 싶더니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흐리다가 맑아질 것이라던 일기예보가 빗나가서 당황스러웠다. 곶자왈 초입에 이르자 빗줄기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서쪽 하늘이 밝은데다 빗줄기가 그리 세차지 않았다. 비가 그칠지도 모르니 조금만 걸어보자고 누군가가 말했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접어든 숲길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비 내리는 숲으로 들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걷지 않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숲은 원시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제주도가 아니라 먼 나라의 정글 속을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큰 나무는 자신의 몸에 붙어 기생하는 식물을 밀어내지 않았다. 무성한 그늘에 자생하는 여린 식물도 자신의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무릉곶자왈은 아름다운 공존상을 수상할 만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숲이다. 형제가 숯을 구웠다는 ‘성제숯굿’과 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밭을 일구었다는 ‘정개밭’ 표지판이 보였다. 삼을 재배했다는 ‘삼가른 구석’이라는 안내판도 있었다. 오래전 사람이 살았던 희미한 흔적이 공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울울한 숲의 아름다움은 지난 시간을 지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와 풀잎 하나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후다닥 뛰어다니는 노루 무리와 산새들의 지저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름 모를 나무와 풀을 보면서 철부지 소녀들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빛깔이 고운 산복숭아꽃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빗줄기는 굵어졌다가 금세 가늘어지고는 했지만 숲은 말이 없었다. 아이들처럼 팔랑거리는 마음만 숲 속의 나무들 사이를 뛰어 다녔다. 숲에서는 키 큰 나무라 해서 가느다란 넝쿨 식물을 업신여기지 않았고, 여린 꽃이라 해서 주눅이 들지도 않았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잡초까지도 그곳에서는 모두가 주인이었다. 어떤 나무나 풀이 저 홀로 살아남으려 했다면 곶자왈의 무성함은 힘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수십 년, 수백 년을 어우러져 살면서도 결코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곶자왈은 눈에 띄는 무질서 속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잠시 이 숲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백 년도 살지 못하면서 천 년을 살 것처럼 저마다 탐욕을 부린다. 아흔아홉 섬을 가진 사람들은 백 섬을 채우려 한다. 한 끼만 굶어도 배고프다고 야단법석이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사람은 원래 남의 뼈 부러진 것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로 자신의 이기심을 합리화시킨다. 우리가 각자의 욕심을 조금씩만 내려놓는다면 저들처럼 어우러지며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곶자왈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사이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들머리에서 왼쪽으로 짧게 한 바퀴를 돌 생각이었는데 엉뚱하게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향에 신경을 쓰면서 걸었지만 좀처럼 날머리를 찾을 수가 없어 막막했다. 휴대전화의 지도를 불러내려 해도 불통 지역이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곶자왈에 대해 들었던 설명도 소용이 없었다. 나무의 수종도 비슷하고 숲의 분위기도 비슷해서 여긴지 저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가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잠시 내리다 그칠 소나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리는 비에 옷이 흠뻑 젖어 잠시만 걸음을 멈추어도 한기가 들었다.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숲을 벗어날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숲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 개방된 길이어서인지, 아니면 비 내리는 날씨 탓인지 길을 걷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자 점점 불안감이 크게 엄습해 왔다. 마음이 바빠졌다. 오던 길을 더듬으면서 마을이 있는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은 더욱 심란했다. 오면서 보았던 마늘밭만 찾으면 될 것 같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안개비 깔린 숲 너머로 군데군데 허물어진 돌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길 초입에서 보았던 구멍 숭숭 뚫린 돌담 뒤에는 마늘밭이 푸른 비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외딴 집이 보이자 날머리를 찾지 못해 걱정스럽던 마음이 사라졌다. 마치 밀림에서 안내자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마늘밭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서 더 많은 시간을 헤맬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마을 사람들을 만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곶자왈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길이 많아 자칫 길을 잃기 쉽다는 것이었다. 흐린 날씨에 덤벙대며 곶자왈로 들어섰던 무모함이 그 정도로 끝이 난 것은 다행이었다. 방향을 잃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곶자왈에 반해 즐거워했던 시간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사는 일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길을 걷게 되기도 하고 자신이 원했던 행로를 벗어나기도 한다. 봄날에 한여름 여우비가 내리기도 하고,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가 퍼붓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도 언제 어느 때 길을 잃고 흔들리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맞닥뜨리는 험난한 현실 앞에 허둥대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가끔은 자신이 발 딛고 선 자리를 돌아보고 행로에서 벗어난 삶을 바로 잡는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숲길을 벗어나자 들판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저 멀리 곶자왈은 천연덕스럽게 푸른빛으로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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