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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난 바다가 좋아
  • 입상자명 : 박 성 은 충북 청주 흥덕고 2학년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휴가철이면 뻔한 질문 중 하나. ‘산으로 갈래, 바다로 갈래?’ 이에 대한 내 대답 역시 뻔한 대답. ‘바다.’ 그렇다. 나는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들 산을 올라가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등산이란 것은 힘들게 올라가고 나선 똑같은 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비생산적인 일이라 생각될 뿐이다. 그런 내가 반강제적으로 산에 가게 되었다. 그것도 등산하기 힘들다는 ‘설악산’을. 불교인이신 엄마께서 어떻게 기회가 닿아 설악산에 위치한 사찰인 오세암과 봉정암을 가게 되셨는데 이런 건 운이 따라줘야 갈 수 있다면서 나를 끌고 오신 것이다. 무슨 산 가는데 운이 따라줘야 한다는 건지. 내가 간다면 가는 거지 산이 날 못 들어오게 막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산 하나를 앞에 두고 이걸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밀려오는 그 절망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난 이 얘길 듣는 순간 그 절망감을 느꼈다. 하루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2박 3일을 내가 절절히도 싫어하는 산을 그것도 땀 흘려가며 등산까지 해야 된다니. 울며 겨자 먹기로 뗀 그 작은 발걸음 하나가 내게 엄청난 가슴 울림을 가져다줄지 그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걷고 또 걷고. 초록인 건 나무요 푸르댕댕한 건 하늘이라네. 맙소사. 등산이 이렇게 힘든 것일 줄이야. 그냥 좀 걸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나 죽었소.’하고 걷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한참 꿍시렁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있나라는 생각에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보이는 건 졸졸졸 흐르고 있는 깨끗한 약수. 얼씨구나. 얼른 달려들어 한 모금 마셔보니 시원한 물줄기가 몸 구석구석 손끝까지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땀 흘리고 마셔보는 약수라 이거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드니 어느새 꿍시렁대던 마음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같이 등산하시는 분들과 함께 앉아 도란도란 얘기도 하니 즐겁기도 하고. 하지만 갈 길이 멀기에 그 즐거운 시간은 조금 더 걸은 뒤에 다시 맛보기로 했다.
어깨 위를 짓눌러 오는 가방의 무게와 땀으로 인해 얼굴에 달라붙는 머리카락까지. 이만저만 짜증나는 게 아니었다. 보통의 나였다면 진작 짜증을 냈을 법한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괜찮았다. 머리 위에는 푸른 잎 한아름이 햇빛을 막아주고 산 속의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얼굴과 몸을 스쳐지나 가면서 식혀주니 괜찮았다. 어쩌면 나는 조금은 산을 사랑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바람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기 보이는 작은 고개 하나가 마지막이라고 가리키는 엄마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것만 넘으면 된단 말이지. 천근만근 같은 몸을 악착같이 이끌고 마지막 고개의 꼭대기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청난 수의 다람쥐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도착하신 분들이 건네는 과자를 전혀 거리낌 없이 받아먹고 있는 다람쥐들을 보며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무슨 다람쥐들이 사람을 보고도 도망을 안 가나.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한참을 웃으며 바라보는데 새삼 산이란 게 대단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 하나에 엄청난 생명들이 숨쉬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귀여운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과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나무, 너무 맑고 투명해서 눈이 부신 물까지. 산이란 존재 하나가 이 많은 것들을 포용하고 있다니. 산 그 자체가 하나의 숨쉬는 생명이라는 생각이 드니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졌다. 오는 길에 지팡이로 쓰려고 하나 꺾었던 나뭇가지가 마음에 걸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람쥐들과 인사를 하고 얼마 안 가 목탁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도착지인 오세암에 도착한 것이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 걸음 떼기가 힘들었는데 목적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자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절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짓누르던 가방부터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마자 눈 앞에 나타나는 엄청난 광경에 멍해진 것이다. 이 순간 내 발은 땅 위가 아닌 공중을 떠 있는 것만 같았고 이 순간 이곳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곳에서 푸른 하늘과 그 밑에 솟아있는 푸른 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가슴 벅차게 만들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을 때의 벅차오름이 이와 같지 않을까. 바보같이 넋을 빼고 산을 바라보고 있던 내가 우스웠는지 엄마가 내게 한 마디 건네셨다. “오기 싫다며 뭐가 그렇게 좋아서 바라보고 있어?” 그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어 새치름하게 대답했다. “좋긴 뭐가 좋아. 힘들기만 하구만….” 사실 산이 조금은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원히 가지 않을 것만 같던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마지막 도착지인 봉정암을 향해. 봉정암까지의 산행은 그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걸어올라가는 게 아니라 기어올라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힘들지 않았던 건 나와 같이 산행을 한 물줄기들 덕분이다. 비록 나와 산행 방향이 다르긴 했지만 올라가는 내내 옆에서 흐르던 맑은 물줄기는 보고 있기만 해도 나를 시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얼마를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했을까. 저 멀리서 계곡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덤으로 ‘빨리들 와요. 여기 완전 천국이야, 천국.’이라는 앞서 가신 분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너무 힘들었던지라 천국이고 뭐고 얼른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빨리하다보니 어느새 눈앞에는 계곡 하나가 나타났다. 우선 돌다리를 건넌 후 쉬자는 엄마의 말에 얼른 건너 가방을 풀고 자갈들 위에 턱하니 앉았다. 그러고 나서야 계곡의 모습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와…. 정말 천국이다, 천국. 물은 너무 맑아서 내가 손 하나라도 넣었다가는 금방 오염될 것만 같았고 힘찬 물소리들은 내 몸속 구석구석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배고플 때 먹으려던 주먹밥을 꺼내 먹으며 생각했다. 아마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세상 그 누구도 맛보지 못할 최고의 주먹밥을 먹고 있는 중일 거라고.
오랫동안 앉아 있고 싶었지만 이러다간 금방 어두워진다는 말에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다. 올라가면서 내가 지금 점점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있구나라는 게 실감나는 게 점점 눈앞의 모습들에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뎠다가는 이 거대한 산 속 어딘가에 삼켜질 거란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해져왔다. 마지막 고지라는 곳에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까지 느껴졌다. 큰 바위 하나가 보이기 시작하고 저기만 오르면 다 온 거나 마찬가지란 얘기에 신나서 얼른 바위에 올랐는데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순식간에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산들이 눈앞에 솟아 있는 게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데 그 거대한 광경에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밤늦게 흘러나오던 애국가 화면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을 이렇게 내가 보고 있다니. 경이롭다는 표현을 이런 때 써야 하는 걸까. 산이란 게 이렇게 경이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니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다가 아름다움 앞에서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이란 게 사실은 별거 아닐 수도 있겠다는 뭐 그런 생각. 지금 나는 이 거대한 산의 일부분일 뿐일지도 아니 어쩌면 제멋대로 들어온 침입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뭐라고 산을 그리도 싫어하고 무시했는지 창피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오르면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고 국기를 막 꽂아 세운 산악인처럼 득의양양하게 서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어떻게 산을 정복할 수가 있단 말인가.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며 함께 웃는 것이란 것을 이때서야 느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광경들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내가 깨우치지 못했을 것들을 깨우쳐주었다. 이 엄청난 일들은 모두 산이 내게 선사해 준 것들이다. 그렇다. 이미 산이란 것은 내겐 산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이번 휴가는 산으로 갈래, 바다로 갈래?”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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