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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산으로부터의 배움
  • 입상자명 : 유 기 상 전북 전북외고 2학년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예?" 지리산이요? ”
나는 깜짝 놀랐다. 2박 3일로 예정된 전북 학생 수련원에서의 수련과정 중 ‘국토 순례’라는 명목으로 지리산 바래봉 등반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놀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단순히 놀러가는 줄 알고 따라간 지리산에서 나는 초등학교 3학년, 그 어린나이에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인생의 쓴맛(?)을 보았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같이 지리산 종주를 가시려고 하셨고 평소 아버지와 여행과 드라이브를 자주 다니던 나에게도 갈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평소와 같이 “OK!”를 외쳤고 그것은 곧 악몽의 시작이었다. 지리산은 다른 곳과 달리 매우 험하고 고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충고에도 나는 별 귀 기울이지 않고 ‘산이 험해 봐야 얼마나 험하다고… 제까짓 것이 감히 사람인 나를 이기겠어? ’ 라는 자만심과 함께 산으로 출발했다. 날이 저물기 전까지는 내 예상대로였다.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익히 봐온 산등성이의 마치 녹색 양탄자와 같은 오밀조밀한 숲의 모습은 그날도 여지없이 내 마음 속에 이 산은 내 발아래 있다는 정복감이 들게 했고, 등산로 양쪽으로 흐드러지게 핀 이름 모를 알록달록한 꽃들도 산마저 무릎을 꿇린 개선장군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상상도 어느덧 날이 저물면서 막을 내렸다. 산은 평지와 달리 지대도 높고 기온도 급속도로, 또 많이 떨어져서 여름이라 할지라도 밤에는 매우 춥다. 바로 그때가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충고를 흘려들은 나는 추위에 덜덜덜 떨어야 했다. 가까스로 한 산장에 도착하긴 했지만 종주 일정상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간단한 야참과 휴식 후에 바로 또 출발하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걸어서 끝까지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지리산 종주를 하긴 했지만 그 후유증은 극심한 감기몸살과 온몸의 근육통으로 인한 침대신세였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지리산을 다시 가기 전까지도 비록 그렇게 아플 일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었다. 그런 채로 지리산을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수련원에 도착해서 여러 활동을 끝내고 저녁에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인솔하고 가신 영어 선생님께서 안마를 부탁하셨다.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다니시지 않으시고 우리들과 함께 모든 코스를 체험하시느라 피곤하셨을 것이란 걸 예상한 나는 물론 해드리겠다며 선생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시원해하시며 안마를 받으신 선생님께서 나에게 갑자기 질문을 하셨다. “기상아, 너 산 자주 타냐? ” 그래도 남들보다 산을 좀 많이 다녔다고 자부하는 나는 “예. 아버지랑 같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저곳 다녔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그럼 너는 산이라는 곳을 아냐? ” 라고 물으셨다. 산이라는 곳에 대해 안다 모른다 하는 개념이 서지 않았던 나는 “뭐, 그냥 평지보다 높고 올라가 보면 경치가 멋있는 곳 아니에요? ” 라고 대답하자 선생님께서는 “그럼 너에게 산은 그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냐? ”라고 물으셨다. 나는 “예. 산이 우뚝 솟은 이유는 사람이 그 정상을 정복한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라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혹시 너 산에 오르고 나면 몸이 매우 피곤하거나 아플 때가 있지 않니? ”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적이 여러 번 있는 나로서는 매우 신기해서 어떻게 아셨는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답변해 주신 후에 주무시러 가셨다. “기상아, 산이라는 곳은 말이다, 그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만일 오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그 수많은 나무와 이름모를 풀과 뛰노는 동물들도 존재할 이유가 없는 그저 쌓여진 흙더미에 지나지 않게 되잖니. 하지만 산은 그런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부자가 오든 거지가 오든,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는 젊은이가 오든 세상풍파 다 겪은 늙은이가 오든지 간에 자신의 몸을 바쳐 빈부의 격차나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녹음 아래 쉴 수 있게 해주고, 맑은 공기와 시냇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해 주는 인간에게 있어 마치 부모님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란다. 선생님이 말한 내용을 잘 기억했다가 내일 산에 오를 때 한번 곰곰이 되새겨보렴. 그럼 너의 궁금증이 풀릴 수 있을 거다.”
그 이튿날 아침, 지리산 바래봉 등반이 시작되었다. 옛 버릇을 못 버렸는지 또 맨 먼저 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마음이 잠시 들었으나, 곧 어제 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어보면서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산을 정복하겠다는 마음을 버리니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그러나 그 느림은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떠들면서도 갈 수 있었고, 평소에는 보지도 못했고 봤어도 별 생각 없이 지나쳤을 법한 아기자기한 풀꽃들도 길가에서 살랑살랑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날도 보이던 산등성이의 녹색 양탄자는 더 이상 내 발 아래 깔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하늘 밑에서부터 초록의 파도를 이루며 내게 넘실넘실 다가오고 있었다. 또 바래봉의 철쭉은 마침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중이어서 발걸음 옮기는 능선 능선마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수줍은 아가씨마냥 날 반기어 주었고, 길가에 있는 갓 봉오리가 터진 철쭉은 사람이 신기한 듯이 고개를 있는 힘껏 내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는 듯했다. 계속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꽃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다보니 어느덧 바래봉 정상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산을 정복했다는 느낌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아! 이것이 산을 오른다는 것이구나.” 선생님은 내게 진정 산을 타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었다. 산은 무턱대고 정상엘 올라가서 정복하는 것이 오르는 목적이 아니라 오르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무수한 생명체와 서로 교감하고, 자연의 신비에 경이로워하고, 나 자신에 대한 인간적인 변화의 기회를 얻는 것이 그 목적인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어느 유명한 산악인이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산은 감히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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