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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내게 있어 숲이란
  • 입상자명 : 임 소 희 경남 창원 창원여고 1-7
  • 입상회차 : 6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이젠 희미해져 버린 기억 어딘가에, 그 숲이 있다. 변함없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 듯, 여전하게 말이다. 초등학교 때, 한적한 바닷가로 여행을 갔었다. 텐트를 쳐놓고 그 안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낮잠도 자고, 모래찜질도 하고 수영도 하고 이틀을 그렇게 바닷가에서 신나게 놀았다. 하지만 아무리 예쁘고 볼 때마다 새로운 멋진 바다일지라도 이틀 동안 계속 보고, 놀다보면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지기 마련.

집에 돌아가자고 우는 동생의 손을 꼬옥 잡고 텐트 뒤쪽, 숲으로 난 조그마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작이야 심심해서 무작정 보이는 대로 길이 난 대로 ?었으??머지않아 새소리를 따라, 다람쥐를 따라 걷게 되었다. 언제 울었냐는 듯 동생은 새소리를 따라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난 헨젤과 그레텔이 된 듯 바닥에 표시를 해가며 길을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한 나와 동생은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바람소리, 나뭇잎소리, 새소리, 꼬르륵 소리… 등, 보잘 것 없이 들렸던 이전의 그 소리들에 귀 기울이며 나와 동생은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었다.

주머니 속에 넣어 가져온 찌그러진 빵과, 동생 손에 꼬옥 쥐어져 있던 과자를 새들하고 나눠 먹으며 한참을 그 나무 아래에 있었다.

TV를 보지 않고도, 뛰어 놀지 않고도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마냥 즐겁고 신나고 행복했다. 무심코 밟아대던 개미들을 관찰하고, 멀리 쫓아버리던 새들과 함께 빵을 먹고, 나뭇가지로 흙에다 그림을 그리고, 흩어져 있던 도토리로 공기놀이를 하는 게 휠씬 더 즐거웠다.

꼭 동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꿈을 꾸는 것처럼 아무런 걱정없이 기쁘고 행복하기만 했다.

특이하게 생긴, 색이 고운 나뭇잎을 소중한 보물처럼 옷에 가득히 안고서 바닷가로 돌아오는 길. 뱀을 보고서 놀란 동생 때문에 업고 돌아오느라 힘들긴 했지만 사실 그것마저도 좋았던 것 같다. 적어도 동생에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려 가만히, 착하게 내 등에 업혀 있어 한결 편했으니 말이다. 업혀서 무섭다고 발로 차고 울기라도 했다면 아마 우린 서로 힘들어서 길을 헤매다 마녀의 집에 찾아갔을지도….

텐트에 잠든 동생을 눕히고서 왜 이렇게 늦었냐며 엄마에게 잔소리를 좀 들었지만 괜찮았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도 있고, 마냥 아이처럼 파묻혀 놀았던 숲도 있고….

그래서 그런지 집에서라면 짜증내고 토라져 있었을텐데 왠일인지 오늘은 괜찮았다.

아빠하고 모닥불을 피워서 군고구마를 먹으려고 나뭇가지를 주우러 저녁, 해진 후에 숲에 또 들어갔다. 텐트 불빛이 보이는 멀지 않은 거리이긴 했지만 그래도 밤이라 아까 낮이랑은 다르게 좀 무서웠다. 아빠랑 같이 있긴 했지만 괜히 부엉이가 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빠가 골라주는 나뭇가지들을 들고 있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잎들 사이로 보이는 별들, 타닥타닥하고 타오르는 모닥불 위로 반짝이는 별보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보이던 별이 내겐 더 반짝이고 예뻐보였던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다음날, 아침 일찍 그곳을 떠나왔다. 다시 만나자고 인사할 틈도 없이, 혼자 남은 숲의 배웅을 받으며 잠든 채로 말이다.

열일곱, 고등학생이 되었다. 더 이상은 동화 같은 환상을 꿈꾸지도 않고, 숲이나 바다를 떠올릴 새 없이 수많은 교과서와 참고서에 파묻히고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쳐만 갈 뿐이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다.

저번 주에 미술시간에 풍경화 그리기를 위해 사진을 가져오라고 했었다. 아침에 집을 나오고 나서야 그 생각이 났다. 부랴부랴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가 책장에서 아무 앨범이나 집어들고 나왔다. 미술실에 들어와서야 앨범에 든 사진들을 보았는데 그건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들이었다.

사진찍는 게 취미인 아빠가 찍어둔 바다와 숲 사진이 한가득 있었는데 나랑 동생이 손잡고 숲길로 들어서는 사진과, 엄마의 선글라스를 쓰고서 바다 위에 분홍 튜브와 함께 둥둥 떠 있는 내 사진, 모래에 파묻혀 발가락만 보이는 동생 사진도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사진들. 사진을 보고서 밑그림을 그리는 내내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참아내느라 혼났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들인데 어쩌다 잊고 만 걸까…. 도대체 뭣 때문에 내가 이렇게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침 노는 토요일이었기에 나는 주저할 것도 없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어디였는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은 잊고 싶지가 않다. 그 숲도, 추억도, 나 자신도. 여전히 푸른빛으로 출렁이고 있는 바다를 보며 웃었다. 그동안 수만 번을 지나쳐 갔을 파도와, 작아지고 사라져 버렸을 내 발 아래를 보며 슬펐다.

뒤돌아 그때와 다름없이, 물론 나무는 더 자라 있었고 풀도 무성해 있었지만 어쨌든 변함없이, 햇빛이 비추는 그 숲의 오솔길을 보자 행복했다.

변함없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날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나뭇잎을 흔들어대는 숲. 뭐랄까, 그때로 돌아가 아이처럼 마냥 기분이 좋고 행복했다.

사실 숲을 보기 전만 해도 잘 몰랐다. 내게 숲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건지…. 소중한 추억을 만든 곳? 동화 같은 환상? 하지만 따져보면 내게 가장 소중한 추억은 1년 전, 남자친구랑 처음 바다여행이 된 중3 졸업여행으로 바뀌었고 동화 같은 환상은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같은 환상이 되었다. 어찌보면 이젠 그냥 그런 추억이고 유치하고 웃긴 환상이었을 수도 있다. 근데 그냥 보고 싶었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숲을 본 후에 난 알게 되었다. 텅 비었던 가슴이 가득 채워지는 걸 느끼며 숲의 의미를 알았다. 추억도 추억이지만 너무도 편한 휴식처였다는 걸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잊고 있었을 때조차도… 한결같은 휴식처.

한동안을 그렇게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스케치북을 펼쳤다. 미완성의 그림을 그려나가며 생각한다. 지금 이 마음을, 그 추억을 그려내겠다고. 어쩌면 나보다 더 힘겹고 지쳐 있을 부모님, 운동선수라 힘들 동생, 벌써부터 공부에 사회에 묻힌 친구들에게 좋은 휴식처를 선물하고픈 마음에 물감에 손이 물드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나처럼 그들도 각자의 마음에 행복한 추억이 가득한, 아름다운 숲을 그려 넣었으면, 잠시라도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숲은 아마 내게 그랬듯, 그들에게 최고의 휴식처가 되어 줄 것이다.

숲은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이지만, 우리가 모를 뿐이니.

기쁠 때도, 힘이 들 때도 떠오를 그 숲이 언제까지나 그곳에서 변치 않고 나를, 우리들을 지켜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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