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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그린 샤워를 아시나요
  • 입상자명 : 이유미 강원 춘천 춘천여고 2-1
  • 입상회차 : 6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강원도에는 유달리 산이 많다. 한반도의 등뼈라 불리는 태백산맥도 그 뿌리를 강원도에 두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10년을 살았다. 하지만 늘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산은 내게 있어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존재였다. 어디에나 산은 하나의 풍경으로 당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학을 맞아 엄마의 고향이 있는 남녘 지방에 갔을 때 나는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평야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지?”

드넓은 평야!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던 나는 엄마의 말씀에 놀랐다. 과연 끝도 없이 펼쳐진 땅 위엔 아직 여물지 않은 벼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넉넉하고 평온해 보이는 평야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잠시, 나는 불현듯 그리움을 느꼈다. 뭔가 빠진 게 있었다. 무뚝뚝하고 거칠고, 투박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더없이 편안하고 푸근하고 수려한 산, 강원도의 산이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우리 식구와 이모네 식구가 다 함께 용평으로 놀러간 일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더위를 씻어버리기 위해 오대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계곡으로 피서를 가는 참이었다. 두드리면 통통 소리가 나는, 속살이 빨갛게 여문 수박을 끌어안고 부푼 마음으로 달려간 우리를 진녹색 여름옷으로 단장한 산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맑고 찬 계곡물에 수박을 담가놓고 물에 몸을 적시며 깔깔대는 우리의 웃음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가 되어 퍼졌다. 온 산의 나무들도 가지와 잎사귀를 흔들며 화답하는 듯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 피곤해진 우리는 널따란 바위 위에 돗자리를 펴놓고 드러누웠다. 시원한 나무 그늘이 햇살을 가려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언뜻언뜻 부서져 쏟아지는 햇살조차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파아란 하늘과 진녹색 산, 맑디맑은 물소리와 산새의 노랫소리…. 모든 것이 상쾌했다. 행복에 겨워 나는 눈을 감았다.

“엄마, 기억나? 우리 설악산 백담사 계곡에 놀러갔을 때. 거기 계곡물이 에메랄드빛 초록색이었잖아. 그때 나랑 소희가 뭐라 했었는지?”

“음, 뭐라 했었지?”

“소희는 물 속 바위에 이끼가 껴서 물이 초록빛인 거랬어. 근데 난 뭐랬는지 알아요? 산이 푸르러서, 그 빛이 물에 비친 거라 그랬어. 참 순진하죠? 하하하….”

하지만 그날 저녁, 갑작스럽게 시작된 생리 때문에 나의 즐거움은 만 하루도 가지 못했다. 나는 밤새 생리통에 시달렸다. 즐거워야 할 휴가의 첫 밤을 고통으로 보내고도 아픔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빠께서 약국에 나가 진통제까지 사다 주실 정도로 심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오후가 되어 평소처럼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여전히 아랫배엔 묵직한 통증이, 허리엔 끊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걸을 수는 있니?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상쾌한 곳에 가보지 않으련?”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며 아빠께서 하신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종일 갑갑한 방안에 있어서 그런지 몸이 더 무겁고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같았다. ‘어디를 갈까?’ 설레고 들뜨는 맘으로 조금씩 몸을 추슬러 향한 곳은 용평리조트 내의 삼림욕장이었다. 예상 외의 곳이라 다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삼림욕’ 말만 많이 들어봤지 정작 뭔지조차 잘 모르던 터였다.

“아빠, ‘삼림욕’엔 왜 ‘욕’자가 들어가는 거예요?”

“‘목욕할 욕(浴)’자가 왜 들어가느냐고? 우리 몸을 깨끗이 정화시켜 주니까. 그래서 그린 샤워라고도 한단다. 우리 몸에 있는 유해한 병균들을 죽이고 심신을 안정시켜 주거든.”

삼림욕장 입구에서 우리 일행 대표로 아빠께서 이름과 거주지, 연락처 등을 기재하시고 나서 우리 모두는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발밑에 깔린 폭신폭신한 솔잎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딱딱한 아스팔트길, 아니면 벽돌길만 걷다가 보드라운 솔잎과 흙이 깔린 숲길을 걸으니 걸어도 걷지 않는 듯, 마치 포근한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이따금씩 나오는 나무로 된 길이나 통나무다리 위를 걷는 것도 색다른 맛이었다. 졸졸 흐르는 작은 시냇물도 반가웠고 코끝에 와 닿는 알싸한 솔내음도 상쾌했다. 여름을 잊게 해주는 용평의 시원한 날씨도 한몫 거들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편안해지는 초록빛 나무들은 특별히 향연을 열어 우리 가족을 맞아주는 듯했다. 우리는 몹시 즐거워졌다.

“음이온 공기청정기니 뭐니들 하지만, 이곳 자체가 거대한 진짜배기 공기청정기인걸?”

농담 삼아 하시는 엄마의 말씀에,

“그래. 아토피 환자들도 별 약 다 써도 낫질 않는데 깨끗한 숲 속에 집짓고 살면 좀 낫는다잖아. 이런 곳에 살면 몸도 마음도 좀 좋아지겠어? 안 그래?”하며 이모까지 맞장구를 치셨다.

과연 그랬다. 콧속 깊이 들이마시는 맑은 공기는 머릿속까지 맑아지게 할 것만 같았다. 맑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솔 향기, 풀 내음 등등 향긋한 숲의 기운이 흠뻑 배어 있었다. 게다가 숲 속은 무척 고요했다. 우리의 숨소리, 말소리, 발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귀기울여 들어보면 벌레들이 재미나게 울어대는 소리, 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 그리고 바람결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어느 새 내 몸은 아픔을 잊어버렸다. 찌뿌드드함이나 불편함조차도 벗어버린 지 오래였다. 눈과 귀와 코와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이 공간에 나는 온통 젖어들어 있었다.

“아빠, 난 여기가 무척 마음에 들어요. 산도 있고 사람도 있고. 어느 한쪽만 있는 게 아니라 둘 다 공존하는 공간이잖아요. 난 여기가 정말 좋아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는 길, 촉촉히 습기를 머금은 풀잎들과 군데군데 수줍게 피어난 작은 아기버섯들조차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내 몸은 물론, 마음도, 정신도 모두 싱싱한 풀이 자라난 듯했다. 그때의 그린 샤워를 떠올리며 나는 요즘도 주말이 되면 가끔씩 뒷산에 오른다. 아담한 산이지만 그린 샤워를 하기엔 무리가 없다. 우리를 반겨주는 든든한 나무, 이름 모를 풀꽃들이며 새들의 지저귐은 숲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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