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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진도 가는 길
  • 입상자명 : 최혜린 전남 함평 함평고 1-1
  • 입상회차 : 6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마다 한번씩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다녔으니 올해로 일곱 번째인가보다. 진도대교가 생기기 전, 아빠 어렸을 때는 배를 타고 다니셨다고 한다. 나야 자동차 타고 여행하는 셈이지만 그래도 진도에 벌초하러 가는 일은 그다지 재미난 일은 아니다. 4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아빠와 함께 다녔던 길을 이제는 할아버지 없이 아빠와 함께 간다. 언젠가는 아빠 없이 나도 내 자식의 손을 잡고 다닐 날이 오리라는 상념에 미치면 뭉게뭉게 삶과 죽음의 서글픈 생각들이 솟아오른다. 그래도 산과 숲은 언제나 의연해서 인간사를 품에 안고 세월을 견디니 그 묵묵함에 배울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윙윙~ 소리와 함께 예초기가 잡초들을 쳐내면서 산소의 모습이 드러난다. 쓰러진 풀들을 옆으로 치우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언니와 내가 안돼보였던지 아빠가 “좀 쉬었다 하자.”면서 싸가지고 온 음식들을 푼다. 언니와 나는 사이다 캔을 얼른 하나씩 집어 들고 그늘 속으로 숨는다. 묏자리가 으레 그렇듯이 시야가 툭 터져 눈이 시원하다.

“아빠 저 건너 산 이름이 뭐여요?”

“응, 칠산이야.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봉우리가 일곱 개라 이름이 그렇단다.”

바람이 불자 칠산 숲들이 출렁인다. 그 숲은 우리들 인간세상이나 다름 없다. 온갖 동식물이 어울려 살면서 새끼들을 낳고 씨앗을 남긴다. 작년에는 그 칠산에서 야생 밤을 한아름 따왔던 기억이 새롭다. 조상들은 저 산에 의지해서 약초며 먹을거리며 땔감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인적이 드문 숲이 되었다. 진도에 오고가는 길은 작년이 다르고 올해가 달라서 쭉쭉 뻗어가지만 산과 숲은 철마다 변할지라도 모습은 늘 그대로다.

작은아빠가 예초기를 메고 10여 분 더 풀들을 헤치자 산소 주변이 말끔해졌다. 기계는 참 좋다. 하루 종일 낫질하면서 다듬었을 벌초 일이 두 시간 남짓이면 되니 말이다. 산도 숲도 그리고 묘지까지도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더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다. 소위 ‘난개발’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위적인 개발도 필요해서 할 테지만 이 아름다운 숲이며 자연을 잘 보존하는 손길이 아쉬울 따름이다.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고 그늘에 모여 앉으니 휴~이제 살 것만 같다. 산소 주변에는 소나무 두 그루와 측백나무, 은수원사시나무가 있다. 그중 소나무 한 그루가 병에 걸렸는지 완전히 죽어버려서 안타깝다고 아빠와 작은아빠께서 연거푸 이야기하신다.

“아빠, 우리 해마다 여기 올 때 각자 나무 한 그루씩 심어요. 자기 좋아하는 나무로요.”

“아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아빠는 저 소나무 대신 다른 소나무를 심을게.”

맨날 나에게 잔소리만 하던 언니가 모처럼 좋은 의견을 내자 아빠하고 작은아빠는 소나무, 언니는 밤나무, 엄마하고 나는 마로니에 나무를 심기로 했다.

여름에 강원도 홍천에 있는 삼봉 자연휴양림으로 휴가 갈 때 길가에서 본 마로니에가 무척 늠름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다들 아쉬워했고, 나는 앞으로 오동나무도 심고 배나무, 잣나무, 호두나무 등을 계속 심어나가리라 다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와 작은아빠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업적을 남기느라 개발에만 신경을 쓴다는 말들을 주로 하셨다. 무슨 공단이나 아파트단지 조성, 문화시설, 관광사업에 의욕을 갖는 것은 좋지만 치밀한 검토 없이 의욕만 앞세운다면 아까운 세금만 축내기 일쑤일 것이다. 나는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연이, 저 아름다운 산이, 풍요로운 숲이 오히려 돈도 되고 이름도 남기는 길이 아닐까, 거창한 개발사업이나 토목공사보다는 마을 숲을 가꾸고 가로수를 심는 등 자연에 투자하는 것이 더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봄이면 벚꽃터널을 보기 위해 쌍계사를, 가을이면 단풍나무 길을 보기 위해 내장산을 찾듯 먼 훗날 자연은 반드시 보상을 하기 때문이다. 적은 돈을 들여 커다란 효과를 내는 경제적인 사업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도 후세에 영원히 남기는 일이 아닌가. 충북 청원군 강서면장이셨던 홍재봉 옹이 만든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그 지역의 자랑이자 국가의 보물이고, 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했던 경남 함양의 상림숲 등 역사적인 실례를 얼마 전 한국일보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의 산에는 민족의 역사가 숨 쉬고 겨레의 문화가 서려 있고 조상의 삶이 녹아 있고 우리의 시대정신이 반영되고 후손의 미래가 있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의 삶을 넉넉하고 여유롭게 해주는 일,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옷이 명품이 아니라 진정한 명품은 산과 숲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는데 차가 선다. 진도대교 휴게실이다.

“얘들아,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언니와 나는 음료수를 하나씩 들고 탁 터진 바다를 본다. 다도해에 점점이 떠 있는 산들이 아름답다. 망망대해보다는 산들이 어울려야 바다도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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