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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큰할아버지의 반성과 교훈
  • 입상자명 : 황호성 대전 현암초교 6-4
  • 입상회차 : 6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7월 초, 여름방학도 시작되기 전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웠습니다. 내가 67kg이나 나가는 비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구촌 사람들이 울창한 산림을 마구 베어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지방이 많아서 일찍부터 무더워진 날씨에 ‘여름을 어떻게 보내나?’하고 미리부터 짜증이 났습니다. 씩씩하고 튼튼한 나무들을 암환자 머리카락처럼 사정없이 뽑아내고 베어낸 사람들에게 하늘이 내리는 경고가 아닐까 하여 겁도 조금 났습니다.

그 무더운 7월 첫째 주 화요일에 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너무 말라 뼈만 남으셨는데 결국 78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을 하시다 퇴직하셔서 집에서 쉬고 계시는 우리 할아버지의 한 분 남은 형이었기 때문에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께서는 너무 슬프게 우셨습니다.

명절이 되면 아빠는 우리 가족과 함께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을 모시고 대전에서 금산에 있는 큰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큰할아버지는 맛있는 곶감과 제사지내는 무지개 사탕도 주시고, 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나도 슬펐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슬프기는 했어도 눈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복을 입어보았습니다. 엄마는 ‘아들은 안 입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나를 아껴주셨던 큰할아버지 생각이 나고, 다행히 내게 꼭 맞는 옷도 있어서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완장까지 팔에 둘렀습니다.

큰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셨기 때문에 후손들이 벌떼처럼 몰려왔습니다. 큰 나무가 훌륭하게 자라 씨앗을 뿌려 후손나무들을 퍼트리듯이 처음 보는 친척까지 찾아와 절을 하며 슬퍼하였습니다.

나는 이틀 동안 학교가 끝나자마자 장례식장으로 갔는데 마지막 날에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결석을 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제사를 지내고 하얀 영구차에 올라 시골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금산에 조상들 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 큰집 동네에 도착해 사진을 든 6촌 형과 꽃상여를 따라 산중턱에 있는 묘소까지 끙끙 올라갔습니다. 벌써 포크레인과 동네 사람들이 큰할아버지가 주무실 무덤을 네모나게 파놓고 왁자지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묘 옆에 서 있는 몇 백년 되었다는 키 큰 소나무 숲과 참나무를 보자 나는 4학년 추석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성묘를 마치고 묘 앞에 앉아 큰할아버지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난 것입니다.

“큰할아버지! 저 소나무들은 몇 년이나 됐는데 저렇게 커요?”

“글쎄? 6대조 묘까지 썼으니까 한 이백 년은 될겨.”

“우와~ 소나무들이 진짜 멋져요.”

“그려? 원래 더 많았는디 니 할아버지 선생 맹그냐구 작은 놈은 내가 많이 벴다.”

“공부 잘해서 선생님 된 게 아니고 어떻게 나무를 베서 선생님이 돼요?”

“공부도 잘했지만 우선 돈이 있어야 갈쳤응께. 그때는 다들 너무 가난해서 먹고 살기도 힘들었지. 호성이 증조할아버지가 니 할아버지 중학교 때 돌아가셔서 이 핼비가 갈쳐야는디 시골에 돈이 있나? 나는 나무 한 짐 지고, 니 큰할머니는 머리에 채소이고, 새벽에 대전까지 걸어가서 팔고 오면 깜깜한 저녁이었지. 그 돈으로 공부해서 호성이 할배는 선생이 되었다만 그 울창하고 빽빽하던 나무들이 그때 많이 상했지. 40년 전 일이니까 호성이는 잘 모르것지?”

“네.”

“인삼 농사를 좀 졌다만 4년 만에 캐니께 돈이 없었지. 나무가 울창하고 산이 푸르러야 하는디 그때는 뭐 그런 걸 알간디? 산감이 좀 무서웠지만 얼마나 무식했는지 삼장 밭 총대 한다고 굵기가 팔뚝만한 소나무는 몽조리 베다 벗겨 총대로 썼응께.”

“총대요? 총 개머리판요?”

나는 컴퓨터에서 오락하며 보았던 총대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하! 그게 아니구 인삼밭 그늘 받침대를 말하는겨. 암튼 그때는 나무를 때서 살았응께 나무가 견디질 못했지. 우리 호성이는 나무도 아끼고 산도 아껴야 혀. 그래야 공기도 좋고 사람이 건강하지. 여기서 보니까 울창한 산들이 얼마나 푸르고 보기 좋냐. 꼭 우리 손주들처럼 씩씩하고 보기가 여간 좋아?”

다른 친척들은 제사 지낸 술을 한 잔씩 마시며 묘 앞에서 웃고 떠들 때 나는 큰할아버지와 건너편 산들을 바라보며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삼베에 싼 큰할아버지를 땅속에 눕히고 흙을 한 삽씩 덮으며 어른들이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는 보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빠가 “우리 아들도 봐둬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나도 묘 앞에 서 있었는데 무섭고, 신기하고, 슬프고, 갑자기 큰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나무를 베다 팔아 우리 할아버지께서 선생님이 되시게 했던 걸 반성하고 하늘나라로 가신 큰할아버지. 벌거숭이 산이 온 국민의 노력으로 요즘은 울창한 산이 되었는데 그것이 꼭 손자들 같다며 햇님처럼 웃던 큰할아버지. 나는 반성과 교훈을 주시고 간 큰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산이 벌거벗고 나무가 없는 황폐한 지구를 사람들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요? 나는 산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금방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우선 학교와 동네에 있는 나무부터 괴롭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나는 엄마와 함께 영구차에 올라 산중턱의 묘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울창한 산중턱의 묘지 옆에는 일을 마무리하시는 동네어른들이 몇 명 보였습니다. 큰할아버지 묘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 늠름한 소나무들은 큰할아버지를 감싸 안고 추석 때 다시 만나자며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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