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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산에 대한 소고(小考)
  • 입상자명 : 안태경
  • 입상회차 : 2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누가 내게 어느 산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다 좋아한다고 대답하겠다. 굳이 하나만 대라고 해도 우유부단한 내 성격으로, 다 다르게 멋진 산을 어떻게 하나만 고를 수 있나 못 고를 테지만 죽어도 하나만 대라고 한다면 청계산을 꼽겠다. 내가 청계산을 제일 좋은 산이라고 하는 이유는, 가장 많이 올라 본 산이고, 보기 좋기보다는 걷기 좋은 산이기 때문이다. 작고 아담한 청계산은 사람을 품는 포근함이 있고, 어느쪽으로든 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다. 더욱 좋은 것은 우리 집에서 버스 한 번만 타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러면서도 봄이면 색색 가지 풀꽃을 피워 내고, 여름엔 여름대로 싱그러운 숲을 드리우며, 가을은 설악이 부럽지 않을 만큼 단풍이 곱다. 겨울철 눈 내린 산은 그대로 맛이 좋다. 장비 없이 함부로 덤볐다가는 큰코다치게 무서워지기도 하는 산이다. 내가 아마 강북에 살았다면 도봉산이나 북한산을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두 산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큰 위용과 품세를 자랑하는 산이 바로 서울에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높은 건물에 오르면 강남에서도 보이는 산세는 쳐다보는 순간 가슴이 딱 멎도록 위압적이다. 몇 번 놀러갔던 북한산은 콸콸 흐르는 물, 우람한 바윗덩이, 깊은 숲 모두가 씩씩한 청년 같다. 북한산 하면 깔딱고개를 오르던 가뿐 숨이 지금도 몰아쉬어진다. 아직도 보이는 그 너머 펼쳐지는 멋진 산의 파노라마. 초등학교 2학년 때 단 한 번 오른 도봉산은 사람 좋았던 산으로 기억된다. 치절치절 내리던 봄비가 산에 오르며 눈으로 바뀌었고 길은 없어졌는데, 입으로 계속 김을 뿜으며 헐덕거리며 올랐다. 산이 온통 구름에 갇혀 바로 앞사람 보기도 어려웠다. 털옷 안의 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젖은 몸으로 안개 속에 있으니 마치 목욕탕에 온 것 같았다. 같이 간 이름 모를 아저씨들이 어린데 잘 가네 하며 용기 북돋워 주고 쉴 때는 몸이 어니 따뜻한 것 마셔라 하기도 하고 동상 걸릴라 하며 언 발을 싹싹 비벼 주셨다. 그래서 도봉산은 사람 기억이 많다. 내가 태어나서 열세 살까지 집에서 바라보았던 남산은 너무 친근해서 산으로 느낀 적이 없었다. 청명한 날에도 해질녘에도 은행잎 물들 즈음에도 시골에서 할머니가 올라오셔도 찾았던 남산은,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산보다는 그냥 서울의 전망 좋은 장소로 여겼던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은 산은 소백산이기도 하다. 스카우트에서 여름 야영 때 올랐었는데 여름에 오른 산 치고 그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 산도 산이지만 날씨가 험했다. 너무 추워서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입김이 계속 나왔다. 한여름에 한겨울 날씨라니. 장난기가 발동해서 처음엔 막 뛰어다니기도 했다. 바람은 혹시나 해서 가져왔던 비옷들을 다 찢고 채 먹지 않은 도시락을 다 날려 버렸다. 그래도 왠지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죽기 살기로 올랐었다. 그랬더니 짠 하고 넓은 산등성이가 펼쳐졌다. 땅에 바짝 엎드려 사는 나무들, 그리고 천년을 견뎌 온 주목 군락. 언젠가 날씨가 좋은 날 다시 가 보고 싶다. 봉황산 부석사 안양루 위에서 보는 소백 연봉은 바다를 보는 것 같다. 산이 넘실댄다고나 해야 하나. 손 아래 만져질 것처럼 고운 능선들이 올망졸망 어깨를 걸고 있는 모습은 참 다정하다. 내 첫 산은 설악이었다고 한다. 아빠 등에서 오른 산이었다. 기억에도 없지만, 엄마는 꼭 설악산에 갈 때마다 그 돌 무렵 산행을 횟수에 집어넣는다. 설악은 언제 가도 “이런 산이 있다니!” 하고 감탄하게 된다. 하늘과 맞닿은 푸른 산과 기암괴석이 적당히 어울려 있다. 한여름 비 온 뒤 맑은 날 구름 사이로 보이는 산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정말 넋을 잃을 뻔했다. 꼭 세수하고 나온 어린아이 얼굴처럼 예쁜 산, 몇 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 산이다. 우리 산은 모두 제 빛과 맛이 있다. 그래서 나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어느 산이 좋으냐고 물으면 더듬거리며 하나를 찾아낼 것이고, 그래 놓고도 나처럼 이 산도 저 산도 좋다고들 할 것이다. 요런 맛 저런 맛을 들먹이며 딴 산을 기웃거릴 것이다. 본격적으로 청계산 얘기를 해볼까? 청계산은 정말 많이 갔다. 18년 동안 수도 없이 가서 손으로 꼽을 수도 없다. 내 첫 청계산 기억은 외가 친척들과 함께 간 것이다. 이종 사촌과 외사촌 모두 내 밑으로 겨우 걷고 뛸 정도의 고만고만한 꼬마들이었는데, 그때 다 콧물을 흘려 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외할머니께서는 우리들에게 킁 하며 코푸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흐 하며 소리로만 코를 풀어 서로 쳐다보며 배를 잡고 웃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연신 코를 닦아 주시고, 그런데 물가 나무 아래 터를 잡고 하루 종일 산에 있다 내려올 때는 거짓말처럼 모두 코를 흘리지 않았다. 기자인 이모가 역시 산림욕이 좋구나 해서 서로 뽀송뽀송한 코를 만져 보던 생각도 난다. 고모네랑도 몇 번 갔었는데 물가에 앉아 수박 먹던 사진을 보면 지금도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네덜란드에 사는 동안 양떼 노니는 들판에 누워 하늘을 나는 각종 경비행기를 즐기는 동안에도 여기는 산이 없구나 하며 청계산이 생각났고 스위스 필라투스 뾰족산에 올라서도 부드러운 청계산이 그리웠다. 1년을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동안 피레네 산맥을 넘긴 했어도 산 속에 들어간 적이 없어, 유럽엔 산이 없나 하는 생각뿐이다. 밤 따러 갔다가 애를 따온 날도 있었다. 청계산에는 밤이 굴러다닌다. 지금은 ‘엄마 사람들이 우리 겨울 양식 다 가져가요’라는 아기 다람쥐의 호소 플래카드가 걸리는 바람에 도토리 한 알 밤송이 한 개 손도 안 대고 오지만, 그때는 몰라서 재미있기도 하고 먹을 것이니, 욕심을 내어 밤나무에서 바로 밤을 따기로 했다. 아빠가 나뭇가지를 주워 던졌는데 그 날카로운 끝이 부메랑처럼 휘어 옆에서 구경하던 어린 동생 얼굴로 날아들었고 엄마는 동생을 껴안은 채 바닥에 주저 앉으셨다. 그래도 다행히 눈은 피했지만 눈 바로 아래가 찢어져 피를 흘리는 아이를 안고 아빠는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엄마는 밤송이를 깔고 앉아 밤 가시에 한껏 찔렸는데도 하도 놀래 나랑 손잡고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 내려갔다. 내가 슈퍼맨이라도 된 것처럼 그 높은 산을 날아 내려왔다. 청계산에는 빛 좋은 개살구나무도 있다. 아주 가끔 가는 작은 굴다리 지나 위쪽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길이 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아 길도 없는데 눈 좋은 엄마가 숲속 한 나무를 찾아내셨다. “살구나무네” 하며 고향 사람 만난 것처럼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초록 알이 알맞게 굵은데다 주렁주렁 많이도 달려 있었다. 두 주 뒤 다시 가서 보니 노랗게 익어 있었다. 따먹기 아까울 정도로 잘 익은 살구는 마치 노란 꽃 같았다. 꽃 좋아하는 엄마가 저거 아까워서 어찌 따먹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걱정과는 달리 이것 봐, 여봐 하며 온 얼굴에 웃음 가득 엄마는 다음에 산에 오는 사람들 먹게 몇 개만 따먹자 하시며 나무를 살짝 흔들었다. 후두둑 후두둑 소리를 내며 살구가 땅 위에 풀 위에 나뒹굴었다. 얼마나 맛있을까 한입 베어 무니 입이 오그라든다. “아, 시금털털 개살구다. 태경아. 빛 좋은 개살구가 바로 이거야. 학교 다니면서 배우게 될 거야. 기억해.” 모양만 좋고 속은 없는 빛 좋은 개살구. 빛 좋은 개살구 하면 보기만 좋지 맛없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난 아직도 자꾸 청계산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그 꽃같이 피었던 노란 개살구. 우리 가족의 오붓한 청계산. 그 추억 때문에 마냥 행복해지고 기뻐지는 말이 되었다. 이상하게 산 얘기하면 먹는 추억이 많아 안 되었지만 청계산을 말하며 산딸기 얘기를 놓칠 수는 없다. 위쪽으로 가는 길섶에는 산딸기 울타리가 길게 펼쳐 있다. 아래쪽에 비해 찾는 이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르내리는 이가 없지는 않은데 딸기는 항상 먹을 만큼 남아 있다. 약간 말랑말랑하고 투명하고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한 알 따서 입에 넣으면 그 새콤달콤한 맛이 싸하고 퍼진다. 우리 나라에 와서는 유럽을 그리워하지만 유럽에 있는 동안엔 여기 딸기 넝쿨을 그리워한 적도 있었다. 특히 영국 런던 근교 농장 가게(FarmShop)에 가서 풀 사이 맛없는 딸기를 따 비싸게 사오던 날 우리 가족은 청계산 맛있던 공짜 딸기를 얼마나 그리워했던지, 여름이 되면 이때쯤 누군가 청계산 딸기를 따며 행복해하겠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나라에 돌아와서 8년이 다 되었는데도 딸기 넝쿨에는 가 보지 못했다. 잘 있으려나? 다음번 청계산에 갈 때는 꼭 딸기 넝쿨 길로 가야겠다. 그렇게 여러 번 갔음에도 꼭 보려고 벼렀던 때를 놓쳐 한 번도 못 본 장관이 있다. 원터골 샘터 앞 조팝나무 군락이 있다. 여기저기 조금씩 꽃눈이 터질 때 와서는 다음주나 다다음주에 꼭 와서 봐야지 해놓고는 놓쳐 버려, 꽃이 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철쭉과 진달래도 많은데 그렇게 길나도록 다녔으면서도 한 번도 때를 맞춘 적이 없다. 분홍빛 어릿어릿한 꽃들이 한꺼번에 활짝 핀 그 꽃 무리를 한 번도 못 봤다니! 그러고 보니 꽃나무 좋아하는 엄마도 예쁜 것보다는 맛난 것을 더 좋아했는가 보다. 딸기나 살구 익을 때는 또 밤 익는 계절은 때를 맞추었으나 꽃철은 놓쳤으니 말이다. 청계산은 낮은 물이 있어 좋다. 지금은 산에 오르는 즐거움으로 가지만, 어렸을 땐 정말 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꼭 물가에 앉았는데 철퍼덕거리며 노는 것도 좋지만 물 속에 살아 있는 것이 있어서 더 좋았다. 돌 사이며 나뭇잎을 들추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작은 생명체들. 꼬무락꼬무락 같은 종류끼리는 신기하게도 똑같이 생겼고 다른 종류끼리는 어찌 그리 다른지, 꽁꽁 얼었던 산 속 물이 봄이 되면 속부터 먼저 녹아 얼음 아래서 아른거린다. 살아 움직인다. 청계산은 나무 보는 재미도 짭짤하다. 매봉 다다라서 있는 잎갈나무 숲은 겨울이면 잎을 다 떨구어 푹신푹신한 융단을 만든다. 너덜너덜해진 나무둥치의 물박달나무 숲엔 물 냄새가 물씬 난다. 십리나무 동생 오리나무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던 오리나무 숲, 가을이면 팥알 같은 열매가 다닥다닥 열리는 팥배나무, 나무·꽃 이름을 쉬지 않고 가르쳐 주시던 엄마 얘길 또 물으면 가르쳐 주실테니 건성으로 들었었다. 그래도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친구들과 어디가면 내가 선생 노릇을 한다. 봄에 처음 꽃을 피우는 산수유나무, 가지를 꺾으면 하얀 가락이 나온다는 국수나무, 생강 냄새 나는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 물에 넣으면 푸른 물이 나오는 물푸레나무도 알게 됐다. 청계산은 낮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계절에 관계없이 새벽에 가도 낮에 가도 어둑어둑할 때 가도 항상 그 산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말한다. 청계산은 인기 최고라고. 새벽반, 아침반, 낮반, 오후반, 저녁반, 그리고 밤반 등산객이 다 있는 산이다. 모두 이 산에 와서 숨다운 숨을 쉬고 돌아간다. 이렇게 늘 사람으로 붐비는 산이어서 지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만큼 사람들의 사랑 속에 생활 속에 있다는 게 아닐까? 이용이 아닌 애용을. 그래서 사람과 함께 산도 커가면 좋겠다. 어쩌면 난 청계산과 함께 컸는지도 모른다. 나는 청계산의 변화를 잘 모른다. 그저 계절이 바뀐다는 것 정도를 알 뿐이다. 하지만 청계산은 내가 부모님께 안겨서도 손잡고도 홀로 걸어서도 이 산 속을 뛰어서도 다니는 것을 다 보았을 것이다. 꽃을 보며 기뻐하고 열매를 따먹고 물장난 치고 뛰어다니면서 큰 나를. 나를 키워 낸 산, 이젠 내가 내 안에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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