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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한 톨 한 톨 전해지는 사랑
  • 입상자명 : 조 연 경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연경아, 우리 할아버지댁에 밤 따러 갈까? 할아버지도 뵙고?.”
주말 아침, 엄마의 제안에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네, 좋아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할아버지댁에 부모님을 따라 간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고향을 지키며 밤농사를 계속하고 계신다.
“이제 그만 저희랑 같이 사세요. 여기 이렇게 혼자 계시다 병이라도 얻으시면 큰일나세요!”
아무리 그렇게 말씀드려도 할아버지는,
“이것들이 다 내 자식인디 왜 내가 혼자다냐? 그런 말 하도 마라! 난 말여 고향을 떠나서는 하루도 못 살어야.”
라고 말씀하시며 단 하루도 고향을 떠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탄 차가 고향어귀에 들어서자, 저만치 우리를 마중 나오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
달려가 안긴 할아버지의 가슴이 어느새 내 키보다 낮은 곳에 있었다. 오랜만에 뵌 할아버지의 앙상한 어깨와, 얼굴에 가득한 주름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할아버지, 이제 밤농사 그만 지으시면 안돼요? 저희랑 같이 대전으로 가세요! 네?”
할아버지는 어느새 할아버지보다 한 뼘이나 더 자란 나를 올려다보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이 놈 키 큰 거 좀 보게. 산에 있는 내 새끼들 닮았네 그려? 허허허.”
할아버지는 내 키도 밤나무를 닮아서 큰 거라며 껄껄 웃으셨다. 할아버지께 있어서는 밤나무도 자식인 게 분명한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도 이제 할아버지 고생 그만 하시길 바라실 거예요. 그만 가시지….
그러자 할아버지의 시선이 먼 산으로 옮겨진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밤나무 가지마다 묻어 있을 할머니의 손길 때문에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시는 건 아닐까?
“연경아, 너 이거 좀 볼 테냐?”
할아버지가 이끄는 산에는 어느새 꽃송이처럼 벌어진 입을 하고 있는 밤송이들이 그득하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우리에게 소개라도 하시는 듯 여기저기 바쁘게 우리를 안내하셨다.
“어떠냐? 이놈은 참 실하재? 이놈이 병치레를 좀 했었는디, 이만하길 얼매나 다행인지 몰러.”
할아버지는 내게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그렇게 소개해 주셨다. 더러는 할아버지의 걱정이 묻어 있는 밤나무 소개도 있었고, 또 더러는 미스코리아처럼 늘씬한 키를 자랑하는 할아버지의 밤나무 소개도 있었다. 소개를 다 마치고 나서야 할아버지는 밤을 따라고 허락해 주셨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알려주시는 대로 밤나무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 가며 밤을 털었다. 여기저기서 떨어져 내리는 밤송이가 툭툭 예쁜 소리를 내며 뒹굴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꽉 들어찬 알을 우리에게 뽐내고 있었다.
우리가 밤을 터는 사이, 아버지는 할아버지댁 집안 곳곳을 손보셨고, 엄마는 가지고 간 밑반찬을 냉장고에 넣어드리고 집안 청소를 해놓으셨다. 가까이 고모님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으시겠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늘 마음에 걸리시는 눈치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눈치챈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손을 잡으시고는 다시 한 번, 당부를 하셨다.
“절대로 마음 불편해하지 말어. 나는 말여, 여기가 제일 좋구먼. 내가 살 곳도 여기고 내가 죽어 묻힐 곳도 여기여.”
할아버지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것들이 내게 잘 잤느냐고 문안인사를 하는디, 저것들을 하루라도 안 보고는 내가 못 살겠는디…. 내가 도시에 나가서 하룬들 편히 살겄냐? 긍게 절대로 미안해하지 말어야. 효도란 건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기여. 알것재?”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밤나무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차창으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할아버지의 산을 향해서도 잘 있으라고 손을 흔들었다.
저 산이 건강해야 밤나무도 건강하고, 그래야 우리 할아버지도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실 것 같아서?.
우리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져온 밤을 쪘다. 온 집안에 고소한 밤 향기가 퍼져나갔다. 밤 향기가 다른 때보다 유난히 더 향기로운 것은 거기엔 우리 할아버지의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한 톨 한 톨 할아버지의 사랑이 녹아 있는 밤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오늘도 나는 자식처럼 밤나무를 가꾸고 계실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한다.
부디 할아버지의 밤나무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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