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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내 어릴 적 고향, 그리고 봉제산
  • 입상자명 : 윤 민 정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주변 사람들이 알면 우스워하겠지만, 나도 고향을 무척 그리워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향’하면 나이 꽤나 드신 어르신들이 그립다 하는 산골 마을이나, 아름다운 자연 속 전원 집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는 산골도 아니고, 아름다운 전원 마을도 아니다. 불과 지금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정말 가까운 곳이다. 이토록 가까운 내 고향을 들르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더욱 우습지 않은가…?
나에게 고향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애틋한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태어나서 13살까지 이사하지 않고 한 집에서 살아왔던 어린 시절은 정말 행복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수많은 학원과 시험에 정신없어 하지만, 나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 숙제하고, 친구들과 놀거나, 엄마와 함께 집 앞 재래시장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학교 갔다 와서 학원에 가고, 숙제하고, 시험 보는 일상을 반복하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아니, 지금 내가 그렇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서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다. 매일 틀에 박힌 일상을 따라야만 한다.
아무튼 나는 18년 인생 동안 가장 행복했던 나날을 보냈던 곳이 고향이었기 때문에 고향을 무척 그리워한다.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은 단독 주택이어서 작은 마당이 있었다. 이 마당에는 정말 많은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꽃 이름과 식물 이름을 많이 아는 것도 그 덕분이다. 지금은 심심하면 컴퓨터 따위밖에 할 것이 없지만, 어릴 때는 심심할 때마다 마당에 나가 놀곤 했었다. 봄에는 알록달록한 여러 꽃나무들 구경하고, 푸른 잔디에 물도 뿌려주고, 예쁜 나뭇잎이랑 꽃잎 하나씩 따고… 여름에는 봉숭아 꽃잎 따다가 손톱에 물들이고, 봉숭아 열매인 씨앗주머니 터트리는 데에 재미 붙여서 다 여물은 씨앗 주머니 찾으러 다니고, 분꽃열매인 시커먼 씨앗 터트리면 나오는 하얀 분을 손에 바르며 놀고, 앵두나무 앞에서 빨갛게 익은 앵두 따다 먹고, 향기로운 라일락 따서 작은 꽃다발 만들며 놀고, 가을에는 우리 국화인 무궁화 구경하며 놀고, 감나무에 올라가 잘 익은 감도 따고… 겨울에는 눈 꽃 찾으며 놀고… 우리 집 마당을 아름답게 해주었던 여러 나무와 꽃들 덕택에, 지금도 나무와 꽃을 보게 되면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마당 외에도 시끌벅적한 재래시장에 대한 그리움은 끝이 없다. 지금은 집 앞에 대형마트가 자리 잡아 그 곳에만 가지만, 그 때는 재래시장뿐이었다(지금도 그 지역엔 재래시장뿐이다). 재래시장에 가면 상인들과 손님 사이의 인정은 물론이고, 돌아다니면서 물건 구경하는 재미, 물건 구경하다가 배고프면 떡볶이 사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민적인 분위기도 물씬 풍겨 나오고 정겹기까지 하다.
하지만 마당과 재래시장 말고, 나를 가장 그립게 하는 것은 바로 산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산 옆에 자리 잡은 학교였는데, 그 산 이름은 봉제산이다. 지금 사는 동네의 초등학교를 보면 매연으로 가득한 시끄러운 도로 근처에 있거나 빽빽한 아파트 사이에 숨어 있다. 하지만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산의 일부를 깎고 만든 것이라서 학교 담장만 넘으면 바로 산이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 수업시간에 산에 오르기도 했고, 산 안에 만들어 놓은 수업 공간에서 자연 식물에 대해 배우며, 과학 실험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선진적이고 창의적인 수업이었던 것 같다. 또 쉬는 시간에, 흙 위에 친구들과 원모양으로 앉아 수건 대신에 아카시아 나뭇가지를 꺾어서 수건돌리기 게임을 했었다. 하루 종일 아침 8시부터 4시까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칠판만 쳐다보는 수업을 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옛날이 안 그리울 수가 없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던 중, 이사할 때 가져온 초등학교 파일을 보게 되었다. 그 파일 안에는 산에 있는 나뭇잎이나 꽃잎을 따서 풀로 붙인 뒤, 그것에 관한 설명도 쓰고, 내 생각도 써넣은 보고서들이 들어 있었다. 그 때는 그런 것들이 수행평가이자, 숙제였다. 중학생 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고서, 한 번도 펼쳐본 적 없던 파일이라 낯설긴 했지만 옛 추억에 너무 행복했다. 요즘 어르신들이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어 놀며 자라야 하는데…’라고 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산골마을에서 자란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어릴 적은 자연과 함께하며 보낸 것 같아 뿌듯했다. 어릴 적 자연과 함께한 경험이 지금의 나에겐 행복한 추억이 되니까. 또, 한평생 살면서 자유롭고 걱정 없는 시절은 어질 적뿐이니까.
봉제산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정말 많다. 지금은 아카시아나무가 다른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지만, 아카시아나무 숲 안에 있으면, 정신을 놓을 정도로 황홀한 기분을 갖게 된다. 자연 그대로의 은은한 아카시아향이 좋기 때문이다. 생활용품에 쓰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아카시아향은 머리를 아프게 할 정도로 향이 독하고 이상하지만, 자연 속의 은은한 아카시아향은 잊을 수 없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어릴 적 맡고 자란 아카시아향이 풍겨 오는 것 같다. 또 5~6월이 되면 아카시아꽃이 만발을 하는데, 그 때 산속에 앉아 있으면 향긋한 봄바람에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정말이지, 그 때가 어릴 적 경험 중에서 가장 재밌고 소중한 경험이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서 아카시아향을 맡고 싶어한다면 내 고향인 봉제산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정신없고 머리가 아플 때 산속에서 나는 아카시아향을 맡아 본다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내가 많은 산들 중에서 봉제산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고향이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봉제산은 관악산, 북한산에 비하면 한없이 작다. 그래서 그 지역 주민들만이 아는 그런 산이다. 하지만 봉제산만의 약수터와 산책로는 너무 아담하고 정겹다. 어릴 때, 아빠 손 붙잡고 봉제산 산책로를 걸어 학교에 가곤 했었는데, 그 때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방학에는 친구들과 만나 약수터도 가고, 산속에서 운동도 했다. 언제는 학교 오후 수업 때,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함께 봉제산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나는 줄 뒤편에서 친구와 노닥거리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산속에서 길을 잃었지만 잘 만들어진 봉제산 산책로 덕분에 집을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정도로 잘 조성된 산책로와 운동 공간, 약수터는 내가 봉제산을 더욱 좋아하게 하는 이유이다. 이제는 봉제산에 갈 수가 없다. 방학에는 학원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학기 중에도 학원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도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내 자유 시간이 없다. 그나마 다행으로, 얼마 전 다니기 시작한 논술 학원이 내가 살았던 집 근처에 있어, 고향 근처를 구경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좋은 것은 8층에 자리잡은 강의실 덕분에 창문을 통해 옛 고향 동네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파트만 많은 지금 동네에 살다가,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많은 옛 고향 전경을 보니, 허름해 보이긴 했어도 옛 추억과 감동이 물밀 듯 찾아왔다.
처음 10분은 아무 생각 없이 그 곳만 바라보았다. 저 멀리 봉제산도 보였고,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내가 살던 집 근처, 재래시장도 보였다. 5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면서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내 고향, 아무런 간섭없이 자유롭게, 자연과 함께하며 커온 그 동네, 내 어릴 적 친구들, 그리고 은은한 아카시아향이 일품인 봉제산, 아직 18년밖에 안 살아본 애라고 누군가가 우스워할지 모르지만, 나도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건 바로 봉제산이다. 나에게 가장 많은 추억과 행복을 가져다준 공간이었으니까. 대학생이 되고나서, 시간이 생긴다면 가족들과 함께 내가 자란 고향과 봉제산을 꼭 한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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