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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관악산 계곡에서, 방학의 끝에서
  • 입상자명 : 최 선 주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방학이 끝나기 이틀쯤 전이다. 나는 동생과 엄마와 함께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수영장을 안 간 지는 몇 년이나 지난 터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밖의 뜨거운 햇빛이 불편하셨는지, “관악산 계곡에 수영장 같은 데가 있는데 거기로 가지 않을래?”라고 하셨다.
말도 안돼. 얼마 전에 산을 오르며 다시는 그 지옥을 경험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건만, 이렇게 금방 그 다짐이 깨진다는 말이야?
“싫어, 수영장 갈래.”
수영장을 기대했었던 건지, 동생은 나보다 빨리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아마 그 때문이리라. 내가 난데없이 수영장에서 계곡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어차피, 수영장에 가봐야 살만 타고 물도 더럽고…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지만 그건 자기위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설득으로 인해 결국 수영장은 순식간에 ‘수영장 같은 계곡’으로 변경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대입구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관악산에 도착, 조금만 올라가면 있다는 엄마의 말을 굳게 믿고 마트에서 산 먹을 것들을 들고 올라갔다. 그런데 보이는 건 산과 길, 길, 길….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사람들이 놀고 있는 ‘계곡’이 보인다.
그런데… 말했던 거랑 다르잖아? 난 수영장 같은 계곡이라고 하길래 물은 꽤 깊고 사람들은 수영복을 입고 노는 줄 알았는데 깊기는커녕 허리 깊이인 물에다가, 사람들은 옷을 입고 신나게 물장난 중.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예상했었던 대로, ‘전형적인 그냥 계곡’이라 나는 이건 뭔가… 하고 서 있는데, “전에 봤을 때는 더 깊고 넓었던 것 같은데…. 여기가 아닌가?”
맙소사, 여기건, 저기건 간에 난 더 이상 산을 오를 기력도 없고 올라가봐야 별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져온 수영복은 전부 못쓸 게 되어버렸겠다, 옷은 젖으면 안 되겠다, 나는 그냥 돗자리에 누워서 잠이나 자고 먹을 거나 먹자고 생각했다. 동생은 처음에는 수영장이 아니라고 발악하더니 끝내 어린애답게 벌써 적응해 버렸다. 그런데 심심하다. 바닥은 딱딱해서 불편하지, 사람들이 많아서 시끄럽고 간간이 날아다니는 벌레들… 최악이다. 끝내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리를 걷고 물에 들어가 본다. 뭘까, 계곡이라길래 깨끗할 줄 알았더니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뭔가 떠다닌다. 그래도 흙이리라 애써 외면하고 동생과 노는 것도 지쳤다. 슬슬 질려와서, 혼자 가려다 못 갔던 계곡 변두리 길로 그냥 적당히, 깊은 곳이 있나 알아보러 올라갔다. 조용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있던 계곡의 시끄러움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조용함과 풀들, 사람이 한참 동안 지나지 않은 것 같은 낡은 길. 평소 조용한 곳을 좋아하던 나는 멍하니 걷기 시작했다. 길은 좁고, 밑은 낭떠러지(라고 해봐야 5m 정도겠지만)인 데다가 주변은 풀숲이고, 간간이 벌레도 보였지만 뭐랄까, 산인데, 오르막길인데 올라가고 싶었다. 계속 오르고 싶었다. 세계에서 동떨어진 것마냥 밑의 계곡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물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것은 처음으로 산을 오르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걷다 보니, 길 한가운데에 돗자리를 펴놓고 치킨을 먹고 있는, 소위 말해 개념 없는 것들이 있어 조금 생각해 보다 꽤 멀리 온데다 돌아올 때 힘들면 그건 또 싫으니까 그냥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얼마나 걸어갈지 몰라서 그랬었던 걸까, 꽤나 멀리 걸어왔다고 생각했었던 그 길이 이번에는 굉장히 짧게 느껴진다. 아니면 이제 이별의 길을 걷고 있어서였을까? 잘은 모르겠다. 돌아온 뒤 조금 더 물장난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산은 여전히 싫었지만, 그래도 계곡이라면 또 한 번 가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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