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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하산
  • 입상자명 : 한숙희
  • 입상회차 : 16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몸은 산에서 내려왔는데 마음이 하산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시간 집을 나서면 온종일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랬던 내가 올해는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텃밭 잡초만 뽑았다. 지난 오월 하순께 딱 하루 산엘 갔었다. 야생에서는 여간해서 보기 힘들게 된 복주머니난이 내가 사는 양구 모처 산에 있다는 지인 연락을 받고서였다. 새벽같이 서울에서 달려온 일행과 함께 임도를 따라 정상 가까이 올라간 후 차에서 내려 다시 한참을 오르락내리락 길도 없는 숲을 헤쳐 나갔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멸종위기 종 2급으로 지정된 복주머니난이 바로 눈앞에 군락으로 펼쳐진 장관을 만났다. 용케 사람의 탐욕으로부터 비껴간 곳, 꿈이라기엔 너무 황홀했고 생시라기엔 너무 벅찼다. 간혹 들려오는 새소리, 나무숲 사이 햇살 몇 줌, 가쁘게 몰아쉬는 세 사람 숨소리만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각자 흩어져 잠시 지상으로 내려온 월궁항아인양 수줍게 피어난 복주머니난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꿈결 같았던 반나절 산행에서 내려오는 길, 다함께 약속이라도 한 듯 말했다.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말자고, 오늘 자생지는 영원히 비밀이라고. 그 산행을 마지막으로 나는 정말 하산했다.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꽃쟁이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나도 꽃쟁이였다. 세상이 좋아지고 먹고 살만해지면서 카메라는 더 이상 특정한 사람들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오래전 나도 렌즈교환 식 카메라와 접사렌즈를 장만했다. 그리고 산을 다니며 야생화를 찍었다. 찍어온 사진을 동호회에서 공유하는 일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몰랐던 꽃을 배우는 즐거움은 결혼 후 오랫동안 가라앉아 있던 내 삶을 춤추게 했다. 꽃은 물론이고 새와 곤충, 동물, 자연생태와 환경에 이르기기까지 관심분야가 넓어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꽃쟁이로서 산에 올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축복을 마음껏 누렸던 지난 10여년은 어쩌면 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시름시름 여위어가는 산의 속살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해가 바뀔 때 마다 왠지 예전 같지 않은 산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앓고 있었는데 그동안 희희낙락 즐거움에 빠져 알아차리지 못했을 그 소리가 나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내내 불편했다. 그러던 차에 올해 이른 봄 일부 얼빠진 진사들이 시화호 주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로 겹치기 지정된 수리부엉이 둥지를 찍겠다며 둥지 앞 나무를 훤하게 잘라내고 밤늦도록 플래시를 펑펑 터뜨린 사건이 크게 보도됐다. 다른 맹금류나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은폐된 곳에 둥지를 지은 수리부엉이 가족에게 아닌 밤중 날벼락이 떨어진 셈 인데 나 역시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사실 때문에 공연히 도둑놈처럼 발이 저렸다. 몇 년 전에는 원하는 구도를 얻겠다며 수백 년 된 금강송 몇 십 그루를 베어낸 사진가도 있었는데 이런 사건들이 보도를 통해 세간에 드러나는 것은 극히 빙산의 일부다. 자연을 학대하며 연출해서 만들어내는 사진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꽃쟁이들 중에도 귀한 꽃일수록 사진을 찍은 후 다른 사람이 찍지 못하게 꽃대를 꺾어버리거나 아예 훼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오늘날 많은 동, 식물들이 멸종위기에 놓이게 된 이유는 이렇듯 삿된 욕심에 눈 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단단히 한 몫 했다. 꽃도 보고 건강도 챙기는 일거양득 취미라 여기며 룰루랄라 산을 누볐던 지난날들을 곰곰 뒤돌아보았다. 나만은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연을 망가뜨리는데 일조했던 내 모습이 보였고 다른 사람들만 원망하며 분노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동안 내 목에 걸려있던 가시는 ‘너나 잘 하세요’라는 산의 경고였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산은 오랜 시간 분신처럼 사랑했던 카메라를 내려놓아야하는 일이기에 적잖이 갈등했지만 나는 결국 결심했다. 그리고 행여 마음 변할세라 동호회부터 탈퇴했다. 최근에도 지인으로부터 함백산 꽃 탐사를 가자는 문자를 받았지만 답을 하지 않았다.
작은 꿈이 있다. 머잖아 내 아이들이 결혼해서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 손을 잡고 사부작사부작 소풍을 다니는 꿈이다. “이 꽃은 노루귀란다. 노루귀처럼 털이 보송보송하지? 여기 현호색도 피었네, 꽃을 자세히 보면 노래하는 종달새 입처럼 생겼어. 어머나, 저기 귀여운 도마뱀 좀 봐봐.”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접할 수 없는 체험을 하면서 저절로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며 자랄 것이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일부로 살다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 자연의 중심에 언제나 가장 고맙고 가까운 벗, 산이 있다. 산은 봄꽃부터 겨울눈꽃까지 사시사철 꽃을 피우고 미생물부터 맹수까지 온갖 생명을 품는다. 산은 생명으로 詩를 쓰고 우리는 산이 쓰는 詩를 평생 몸으로 읽으며 산다. 부모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지혜로운 인디언들은 자연은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지금처럼 자연을 훼손하다가 먼 훗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손들이 백과사전으로만 자연을 배우게 된다면 우린 내리사랑 부모도, 지혜로운 조상도 될 수 없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산이 그립다. 그러나 이제 산을 향한 과거의 그리움을 접는 대신 내가 죽고 없을 먼 훗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리워하려한다. 나의 손자, 손녀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대대손손 건강하고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나도 안다. 고작 나 한사람 하산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몸짓에 불과한지. 그렇지만 믿는다. 나의 작은 몸짓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며 가장 어른스러운 그리움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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