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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오동나무의 대물림
  • 입상자명 : 김화순
  • 입상회차 : 16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오늘은 시아버님의 제삿날이다. 남들은 조상의 제삿날이면 경건하고 엄숙하게 상을 차리고 망인께 절을 올리지만 우리 집은 딸이 켜는 가야금으로부터 제사가 시작된다. 딸이 할아버지를 위해 켜는 가야금소리가 온 방안에 퍼지면 나는 눈을 감고 가야금 선율을 쫒아가 아버님을 찾는다. 낭랑한 가야금의 소리 끝에 시아버님이 서계셨다. 삽과 괭이를 든 시아버님께서는 산밭에 나무를 심고 계셨다.
“손녀딸을 낳았으니 시집갈 때 이 할아버지 몫으로 장롱이라도 하나 해주고 싶어서…….”
이번 제삿날에 내가 시아버님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절을 올리고 술을 한 잔 따르며 그 분을 생각하니 오동나무로 덮은 산과 숲이 먼저 그려졌다.
돌아가신 시아버님도 조상님들이 묻힌 선영에 유택을 마련했다. 선영의 바로 옆에는 밭뙈기가 하나 있다. 우리 식구는 그 밭을 산밭이라고 불렀다. 시아버님께서는 그 산밭에 오동나무를 가득 심어 나에게 물려주셨다.
“이 밭은 네가 주인이다. 그러니 오동나무가 크면 우리 손녀딸 지연이에게 필요한 장롱을 만들어 주거라.”
예나 지금이나 오동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여자들에게 필요한 세간이었다. 그랬기에 우리의 조상들은 딸이나 손녀딸을 위해 오동나무를 심었다. 아버님께도 손녀딸이 걱정되어 산에 오동나무를 심어 나에게 물려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님의 정성이 깃든 그 산밭을 거의 잊고 살았다.
“저기 산에 있는 오동나무의 주인이 아주머니라면서요?”
어느 날 산밭에 서있는 오동나무를 팔라며 우리 집을 찾아온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야금을 만드는 명장이란다. 그는 산밭에 심어져 있는 오동나무를 탐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의 유산인 산밭의 오동나무를 파는데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께서 심고 가꾸시며 나에게 물려주신 나무를 싹둑 잘라낸다는 것은 시아버지와 며느리로써의 인연을 자르는 것과 같기에 망설인 것이다. 그런데도 남편이라는 사람은 돈에 욕심이 났는지 억지 논리를 펴며 나를 압박했다.
“스위스의 할아버지는 산을 일구고 자갈을 줍는데 일생을 바쳤지, 그리고 그 아들은 나무를 심고 풀씨를 심는데 평생이 걸렸지, 그리고 지금의 손자들은 그 땅에서 소를 키우며 젖을 짜 먹으며 행복을 누린다고…….”
어쩌면 남편의 말은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나무란 자신의 대에서 끝을 보기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심는 사람 따로, 베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산림사업에 적극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아버님의 덕으로 오늘은 오동나무의 주인이 되었으니 그 혜택을 누린들 누가 걸고넘어질 사람은 없다. 며칠을 생각한 나는 고목의 오동나무를 산밭에 그냥 묵혀둔다는 것은 아버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오동나무를 팔 테니 가야금 2대만 만들어줄 수 있나요?‘
비록 아버님께서 손녀딸이 결혼할 때 장롱을 위해 심었다 하지만 가야금으로 대체해도 나무라지 않으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는 우리나라 가야금 제작의 명장이라고 하지 않던가? 딸은 그렇게 얻은 명품의 가야금으로 국악공부를 시작했고 제법 명성도 얻었다.
“지연아, 오늘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기 전 네 가야금 소리를 한 번 할아버지께 들려 드리자.”
이렇게 시작된 우리 집의 할아버지 제삿날은 손녀딸의 가야금 연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분향을 하고 절을 올린 후 사신과 음복을 거친 다음 다시 아버님을 저승으로 보내드린다. 그러면 돌아가시는 아버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 같다. 아버님께서 애초에 오동나무를 심으실 때는 손녀딸을 생각하기도 하셨겠지만 놀고 있는 산밭이 아까웠을 게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오동나무였으리라! 그렇게 오동나무를 심으셨기에 오늘의 가야금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동나무를 팔고서도 나는 오랫동안 산밭을 잊고 있었다. 오동나무를 팔아 돈을 쓸 줄만 알았지 후손을 위해 다시 나무를 심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돌아간 조상님께서 나무 심는 법을 알려주시고 그 쓰임까지 깨우쳐 주었건만 이를 실천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이던가?
“여보, 올 봄에는 산밭에 오동나무를 심어야겠어요. 우리가 누린 풍요를 이어서 후손이 또 누려야 되지 않겠어요?”
아버님께서 산밭에 심은 오동나무를 팔아 우리는 목돈을 쥐고 손녀딸에게 가야금을 선물했다. 그러면 이제는 내가 우리의 후손에 뭔가는 물려줘야 한다. 그러려면 아버님으로부터 배운 대물림의 정신을 본받아 산밭에 오동나무를 또 심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남편은 나무를 심어봐야 그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산을 가꾸는 것은 시간과 돈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록 산과 맞닿아 있는 거친 땅이지만 시어머니께서 아끼던 밭이고 시아버님의 오동나무 밭이다. 그런 산밭을 산에서 내려온 칡에 싸여 버려둘 수만은 없는 것이다. 나무를 심고 풀을 베고 칡을 없애니 어느새 산밭에 심은 오동나무에 꽃이 피었다. 파란 오동 꽃의 꽁무니를 혀로 빨면 달달한 꿀맛이 느껴진다. 이 맛은 오동나무를 심어 후손을 생각했던 아버님의 사랑이 담긴 맛이고 산밭의 대물림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동나무에 기어오르는 칡을 끊고 봉황이 깃들기를 고대하며 나무를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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