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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사랑의 살구나무
  • 입상자명 : 윤종원
  • 입상회차 : 16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고향집 풍경은 초가 집 두 채를 흙 담이 둘러쌓다. 토담의 높이는 살구나무 아래 둥치를 겨우 가렸다. 살구나무는 우리 집과 동네를 알리는 표지판 역할을 했다.
마을에서 우리 형제들을 가리켜‘살구나무 집 아이’로 불렀다. 봄날 살구꽃이 핀 집이 보이면 ‘구서’동네의 시작 이었다. 우리 집 살구나무는 그만큼 컸고 그림자는 아래채를 덮었다. 살구나무는 집을 지을 때 심어져 해마다 조금씩 그 몸피를 키웠나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어림잡아도 이십 년 이상을 자라 해마다 맛있는 살구를 품고 있었다.
살구나무는 집안의 자랑 거리였다. 나뭇잎 보다 분홍색 꽃이 먼저 피는 살구나무는 초가집과 어울려 명화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날에는 장독대와 마당에는 꽃눈이 내렸다. 살구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 서 있으면 새콤함 살구 맛 생각에 침이 고였다.
여름철에는 살구나무 그늘 아래 멍석을 깔아 여름 한낮의 열기를 피해 달콤한 낮잠을 자기도 했다. 방학이 시작되면 멍석을 깔아놓고 여름 하루를 보냈다. 살구나무는 새들이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새들의 터 역할도 했다. 살구나무는 가족과 새들에게는 무한한 이익을 제공하는 자연의 어머니 품 같았다. 나무가 사람에게 주는 혜택을 일찍부터 보면서 자랐다.
가을철 퇴색되어 떨어지는 잎들은 한곳으로 모아져 사랑채 아궁이 땔감이 되었다. 깊은 겨울밤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는 자연의 교향곡이 되어 귀를 쫑긋하게 했다.
큰 키의 살구나무답게 살구 맛도 최고였다. 빛깔만 요란한 개살구와는 차원이 달랐다. 풍부한 과즙의 맛을 동네에 떨쳤다.빈농의 집에 자랑거리가 되었다. 살구가 익어 수확하는 날을 이웃집도 기다렸다. 살구나무에는 부모님의 원칙이 있었다.
살구꽃이 떨어지고 작은 초록색 열매가 달리면 부모님은 살구 한 알이라도 따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장대로 살구나무를 두드렸다가 호되게 혼이 나고 더 이상 나무를 흔들지 않았다. 살구는 우리 집안의 돈 벌이었다.
살구를 수확하는 날은 장날 아침이었다. 아버지는 새벽에 우리를 깨워 커다란 비닐 네 귀퉁이를 붙잡게 하고는 살구나무를 흔들었다. 떨어지는 살구는 툭 툭 소리를 냈다 . 살구는 한 겨울의 폭설처럼 순식간에 비닐 위에 쌓였다. 부모님은 살구를 골라 좋은 것은 대부분 장터로 가져갔고 품질이 떨어지는 건 우리들이 먹을 수 있었다. 놋쇠 그릇에 골고루 담아 이웃집에 돌렸다. 제사를 지낸 다음날 아침 음식을 나누듯이.
장날의 저녁이 시작되고 더 어두워졌을 때 아버지는 손수레를 끌고 왔다.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품과 형제들의 고무신을 사왔다. 살구를 따는 날은 우리들 신발을 개비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장터 과일 집에 바로 넘기지 않고 더 많은 이문을 내고자 아버지가 장터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살구를 사라고 외치는 소리를 조금 더 큰 후에 들었다. 살구는 생존방식을 가르쳐 주는 처음이었다. 내가 열 살 무렵 살구나무 법칙이 깨어진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저녁 밥은 밭에서 일이 늦게 끝나 늦었다. 배고픔이 더 크게 다가와 모두들 정신없이 먹었다. 밥상을 물리는데 거지가 동냥을 왔다. 내 또래의 낯선 거지였다. 처음이라 우리 집에 온 것이다. 우리 집 살림을 아는 동네 거지였다면 우리 집을 지나쳤을 것이다. 늦은 시간에 들이닥친 방문자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조금 전 밥솥을 긁어 밥을 다 퍼온 것을 식구 모두는 알고 있었다. 동냥 그릇을 채워주려면 밥을 해서 주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하늘에서 흰 쌀밥이 뚝 떨어지지 않는 한 거지의 간절한 눈빛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침묵의 고요가 잠시 어두운 마당에 깔렸다.
갑자기 어머니가 장대를 들었다. 거지를 쫒으려는 줄 알고 우리들도 일어났다. 어머니는 장독대를 돌아 살구나무를 두드렸다. 돌아오는 장날 수확을 준비하던 살구였다. 그해 살구는 유난히 컸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가지가 휘청거리며 살구가 떨어졌다. 벼락같은 화를 낼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살구를 주어 담아 깨끗하게 씻어 동냥 그릇을 가득 채웠다.
“미안하다 쌀도 밥도 다 떨어지고 이것밖에 없다. 얼른 저 집으로 가 봐라”하며 살림이 넉넉한 이웃집을 가리켰다. 거지는 뒷걸음치며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행주치마로 눈물을 찍어냈다.
“야들아 살면서 가난한 사람을 절대로 외면 하지마라. 제일 큰 죄가 된다.”
고향집 살구나무는 보릿고개를 넘는 우리 가족의 지팡이였고 거지의 한 끼가 되었다. 그날 어머니는 사람사이 도리를 살구나무로 가르쳐주었다.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살구나무를 통해 배웠다.
세상의 모든 과일은 둥글다. 부자 입 가난한 입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굴러 가란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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