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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설악산의 겨울나기
  • 입상자명 : 이 지 은 서울 남성중 3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겨울, 아버지의 사업상 문제로 어머니와 아버진 자주 다투셨다. 그렇게 밤새도록 목소리 높여 싸우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잠을 잤다. 그해 겨울은 내가 지냈던 여러 차례의 겨울 중 가장 추웠던 겨울로 기억된다. 유난히도 작았던 나는 누군가가 우리 집 사정을 알게 될까봐 조마조마해 했었고 내 어깨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날도 어머니, 아버지 싸우시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 일찍이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어머니,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어머니, 아버지가 들어오셨는데도 조용한 집안, 이상해서 나가 보니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평온하신 표정으로 무언가 말씀을 나누시고 계셨다. 내가 나가자 어머니는 나를 불러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제야 일이 잘 해결됐어. 그동안 우리 지은이도 많이 힘들었지? 이번 주말에 1박 2일로 설악산에 가족여행을 가자꾸나.”
금방 내 코끝이 찡해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주위가 뜨거워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랬다. 그날이 유난히도 따뜻한 밤이었다.
덜커덩 덜커덩거리는 버스를 탄 지 3시간 만에 도착한 설악산을 너무나 아름다웠다. 겨울이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날 본 눈에 덮여 있는 설악산을 마치 장식 없는 팥빙수 같았다. 내 움츠러든 어깨에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앉아 주물러 주는 듯 내 어깨는 가벼워졌다. 무심코 코 푼 휴지조각을 던지려고 하던 내 손을 부끄럽게 만든 것이 설악산의 위력이었다.
“나는 저기 꼭대기에 있는 태극기 있는 데까지 갈 거야.”
하고 큰 소리 쳐보았다. 작은 몸으로 낑낑거리며 열심히 올라가 봤지만 태극기는 구경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낮지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가
“야호!”
하고 우리 가족은 소리쳤다. 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으나 산은 떠나가지 않고 내 몸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느새 우리 가족은 마치 신선이 된 것 같았다. 머리 위에만 있는 줄 알았던 생활의 시름은 운해를 이루어 이젠 발아래에 머무른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문득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빛이 남은 왜일까? 무심코 바라본 설악산! 그 신비와 장엄이 가슴에 넘치는 감격이었다. 하얀 눈이 덮여 있는 산은 온통 눈을 이불삼아 따뜻하게 누워 명상을 즐기는 것 같다.
설악산 계조암 바로 옆에 있는 용머리같이 생긴 큰 바위 밑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는 옛날 원효대사께서 먹을 물을 마련하기 위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내리친 자리에서 물이 나왔는데 나오는 물이 매일 그날 원효대사께서 먹을 수 있는 양만큼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줄줄줄 쏟아지는 걸 보면 원효대사님께서 여행 온 사람들까지 마실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재미있어 하면서 어느덧 설악산 계곡에 닿았다. 촉촉한 돌들을 방패 삼아 계곡물이 얼어 있고, 그 얼음 아래에는 졸졸졸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얼음에 손바닥은 비벼보자 손바닥이 얼얼해 왔다. 전신에 퍼져나가는 힘든 삶, 얼음의 골짜기를 정복하는 희열에 지그시 눈을 감고서 이 감격과 기쁨을 승화시켜 내 것으로 만들어 본다.
누구나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눈부신 설악산의 의지가 없다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자유를 상실하듯 우리에게도 행복만이 존재한다면 그 행복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고난을 즐길 필요도 있을 듯하다. 설악산의 겨울나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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