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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연교 이야기
  • 입상자명 : 김 남 희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웬 약나무꽃이고?”
“엄마가 젤루 좋아하는 꽃이잖아.”
“벌써 피었나?”
십삼 년 전 3월 중순이었다. 일흔여덟 번째 생신상 앞에서 시어머님과 남편이 나눈 첫 마디였다.
오랜 투병으로 기력이 쇠잔해진 시어머님은, 누워서 무슨 생일이냐고 하셨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음식들로 상을 차렸고, 그 상 위에 올해는 특별히 남편이 준비한 작은 꽃병 하나가 더 놓였다.
한 뼘이 조금 더 되는 꽃가지 세 개에 스물 몇 송이의 노란 개나리꽃이 앙증맞게 달려 있었다. 아직 밖에서 개나리꽃이 피기에는 열흘 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때 이른 개나리꽃이었다.
강변으로 저녁운동을 나갔던 남편이 어느 날 볼품없는 나뭇가지 몇 개를 꺾어 들고 오더니 혼자 한참을 부스럭거렸다. 끝을 엇비슷하게 자르고 설탕물에 담갔다가 꽃병에 꽂았다.
“오늘 보니 가지에 꽃망울이 벌써 부풀고 있잖아. 이거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거든. 우리 시골에서는 이 개나리를 약나무라고 불러. 지금 잘 돌보면 어머니 생신 때쯤은 활짝 필 것 같은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심드렁하게 여겼던 그 볼품없던 가지가 나날이 조금씩 심호흡을 하면서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윽고 그저께부터는 하나둘 노란 종소리를 터뜨리면서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을 위하여 매일 물을 갈며 해바라기를 시키던 남편의 정성과 소망이 통했던가보다.
조금만 앉아계셔도 금방 숨이 차올라서 몇 번을 쉬시면서야 겨우 조반을 드셨다. 상은 물렸지만 개나리꽃병은 시어머님 눈길이 닿는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시어머님은 힘없고 앙상한 손을 뻗어 꽃송이를 어루만지셨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엄마! 풀쐐기 쏘여가며 땡볕에서 연요 따시던 거 생각나세요?”
“…”
“그 해 내 등록금 걱정 덜었다고 그래 좋아하시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아! 나는 그때 보았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가에 가득 고여서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던 눈물과, 아들을 그윽이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참으로 오랜만에 봄 물결처럼 일던 엷은 웃음을!
그날 저녁 큼지막한 케이크 위에 긴 초 일곱 개, 짧은 초 여덟 개가 “생·일·축·하·합·니·다”란 가족들의 합창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케이크 옆에 다소곳이 놓인 개나리꽃 송이마다에도 축하의 맑은 종소리가 달려 있었다.
중학생인 막내가 할머니 대신 후- 하고 촛불을 끄면서 말했다.
“오빤 개나리 꽃말이 뭔지 모르지? 희망이야. 서양에서는 개나리꽃을 골든 벨이라고 해. 노란 종처럼 생겼잖아.”
“오, 우리 막내가 대단한데.”
남편이 대단하다는 듯 막내를 바라봤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경아 아빠! 당신 아침에 연요 따서 등록금 냈다고 하시던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아침에 들은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 줄을 몰라 하루 종일 궁금했던 참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들려준 개나리에 얽힌 시어머님과 남편의 사연은 봄마다 개나리꽃과 함께 아리게 피어난다.
70년대 초만 해도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을 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고, 등록금 철이 되면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봄에는 그래도 곡식이라도 내다 팔든지 하면 되지만, 여름에는 팔 것도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그런 어느 해,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약나무 열매였다. 지금은 어디서나 ‘개나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노란 꽃이 피는 봄의 전령사. 서울 근교에는 열매가 달리는 개나리가 잘 안 보이지만 남편의 고향인 경상북도 북부 지방에는 열매가 달리는 개나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영춘화로도 불리지만, 열매가 약재로 쓰여서 나무 이름도 ‘약나무’로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열매가 열리는 개나리는 중국이 원산지인 산개나리의 한 종류라고 문헌에는 나와 있다.
그 열매는 연교(連翹) 또는 연요라고 하며 팔월 말에서 구월 중순에 익으며 항균이나 항염제로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평소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않던 것이 그 해에는 근(斤)당 천 원도 넘는 바람에 팔월 땡볕에서 시어머님이 풀쐐기나 벌에 쏘여가면서 하나하나 푸른 열매를 손으로 따, 가마에 찌고 말려서 100근을 넘게 팔았더니 2학기 등록금이 거뜬히 되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 한 해도 마찬가지였고.
그때부터 시어머님은 개나리를 보면 반갑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고 했다.
강변의 개나리꽃을 본 순간 남편은, ‘아! 어머니가 혹시 이 꽃이 피는 것을 못 보고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쳤고 반사적으로 서너 개 꺾어왔노라고 했다.
시어머님은 이듬해 개나리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 해 병상에서 때 이른 개나리를 본 것이, 결국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란 개나리꽃이 피고 있다. 아파트 울타리에서, 작은 등산로에서, 강변의 둔치에서도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그 노란 꽃잎 속에서 시어머님 생전의 옅은 미소가 겹치면서 웃음소리가 환하게 퍼져 나오는 것만 같다. 고향 선영에 누워계시는 시어머님 유택 주변도 지금쯤은 개나리, 아니 약꽃의 노란 울타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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