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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나무 섬
  • 입상자명 : 신 경 순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얼마 전 미국의 한 곤충학자가 기막힌 세상을 찾아냈다. 아마존을 끼고 드러누운 밀림을 온종일 헤매던 그가 발견한 것은 수백 년 된 한 나무다.
높이 40m 둘레 9m나 되는 거대한 이 나무는 지붕에 흡사 땅덩어리가 얹혀 있는 듯 한 줄기 빛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가 나무 위에 어떤 곤충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 사다리를 놓아보았다. 하지만 사다리는 턱없이 짧다.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 수동 케이블카를 몰고 왔다. 곤충학자를 태운 케이블이 서서히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곧 나무 위의 세상이 드러난다. 그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거기엔 섬이 있었다. 나무 위에 또 다른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나 단단한 지대가 마련되어, 그 위에 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열매와 수십 종의 새도 보인다. 온갖 희귀한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그 속에 수백 종의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다. 알로에처럼 잎을 겹겹이 둘러싼 어떤 식물은 그 잎들이 모아지는 가운데 7.4ℓ나 되는 물이 채워져 있었다. 이 섬은 누가 언제부터 준비해 온 것일까.
섬은 한 마리 어미 새의 소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미 새는 땅의 온갖 위협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새끼들을 키울 안전한 보금자리가 필요했던 어미새는 드디어 안전한 곳을 찾아냈다. 어미 새 눈에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어미 새는 풀과 마른 가지를 물어와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물고 온 풀에 간혹 씨앗이 섞여 들어와 둥지에 싹을 틔웠다. 얼마 뒤엔 열매도 맺혔다. 햇볕을 받고 발갛게 익어가는 열매는 새들의 먹이가 되었고, 새들의 배설물로 나온 씨앗은 다시 싹을 틔우고 열매 맺기를 반복했다.
나무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자라는 생물을 떠받치기 위해 더 많은 가지를 만들어야 했고, 더 깊게 뿌리내려야 했다. 점점 늘어가는 무리들이 먹어야 할 물이 필요하자, 넓고 튼튼한 잎을 가진 식물은 스스로 물을 가둘 수 있도록 진화되어 갔다.
그들은 한 꿈을 위해 서로를 희생하고 있었다. 식물들은 햇빛으로 엽록소를 만들어 단단하게 우거지고 곤충들은 달빛에 이슬을 받으며 쉼 없이 터전을 일구어 나갔다. 어쩌다 하늘에서 귀하게 비라도 내리면 억센 잎은 넓은 잎을 펼쳐 물을 받아 겹겹이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그 속에 개구리 알을 품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여러 종류의 식물과 곤충이 한데 어울리는 독자적인 섬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곳은 땅의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던 불가침 영역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생태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다.
‘나무 섬’은 얼핏 보기에 우연의 일치 같아 보이지만 땅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소망들이 모여 백 년에 걸쳐 이룩한 꿈이었다.
올챙이가 헤엄치는 물 속에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비춰본다. 공해에 찌들은 하늘이 보이고, 온 종일 매연을 내뿜으며 질주하는 자동차 사이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총총 달려간다. 갑자기 헉 숨이 막혀온다. 이곳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나무 섬’으로 가고 싶다.
나무 섬은 베어지고 있다. 매초 축구장만한 우림지역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현대인의 꿈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죽자구나 달려온 이 세상도 언제 그 밑동이 잘려나갈지 모를 일이다.
훗날 나무꾼은 잘라낸 나무의 나이테를 세다가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울며불며 뛰어다니는 개구리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난데없는 개구리의 출현에 놀라 잠시 두리번대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세다 만 나이테를 마저 세 갈 것이다.
한 마리 어미 새가 되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씨앗 하나를 물고 산과 강, 나무와 풀을 스쳐 지난다. 햇빛에 내 날개가 반짝 빛날 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내 씨앗을 빼앗아 달아난다. 어디선가 그 씨앗은 곧 움터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개구리를 부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무 섬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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