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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산이 흘리는 눈물
  • 입상자명 : 권 효 진 경기 수원 창현고 3학년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야, 야! 그래서 말이지! ” “아아, 거기 좀 치워봐.” “야, 거기 걸레 좀 줘….”
왁자지껄 교실이 시끄러웠다. 방학식을 앞두고 교실 대청소를 하던 날이라 교실 안팎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은 고3이라 쉬지도 않는 방학이지만 방학을 한다는 사실에 매우 들떠 있었다. 그 소란의 한가운데서 아이들 몇 명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뭘 보고 있나 궁금해 호기심에 나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우웅~ 우웅~ 윙~~윙~~윙~~”
창밖에서 나는 소리에 처음 집중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전기톱 소리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려왔다.
“아… 넘어간다.”
옆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창밖에선 큰 나무가 허무하게 쓰러지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한 손에는 전기톱을 든 아저씨와 맨손인 아저씨 둘이서 쓰러지는 나무를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학교를 ‘언덕 위의 학교’ 또는 ‘산 속의 학교’라고 불렀다. 학교는 여우골을 끼고 고개 맨 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창밖으로 내다보면 푸른 여우골의 나무들과 광교산 자락을 볼 수 있고 또한 학교 주변에서 청설모 같은 작은 야생 동물과 멧돼지 노루 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얼마전 월드컵 경기장이 생김과 동시에 도로가 뚫리면서 학교 주변의 산림이 조금 훼손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광교 신도시 건설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던 산림도 훼손되어 가고 있다.
창밖의 사람들은 아마도 광교 신도시의 건설 때문에 운동장너머의 산림을 깎아내는 중이인 것 같았다. 최소 몇 십 년은 그 자리를 버티고 서 있었던 나무들이 전기톱의 공격에 단 몇 분 만에 힘없이 누워버리고 만다. 그렇게 누워버린 나무들은 크레인처럼 생긴 트럭이 와서 어디론가 바삐 나른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숲의 삼분의 일이 불과 한나절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나 손쉽게 나무들이 사라져 간다. 숲이 사라져 간다. 그 장면을 아이들 몇 명만이 굳은 얼굴로 주목하고 있었다. 나도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굳은 얼굴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여우골이 사라지고 광교산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에게 퍽 섭섭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여우골은 우리에게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남을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린 체육 시간에 여우골을 돌며 등산을 하기도 했고 운동장에서 여우골을 타고 지나가는 등산객을 구경하기도 하고 놀다가 목이 마르면 그곳의 약수터로 가서 물을 마시며 신기한 나뭇잎이나 씨, 열매 등을 따며 놀았다. 그런데 그런 추억의 장소가 전기톱의 비명 앞에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우웅~~ 웅웅웅~~ 윙~윙~”
여전히 전기톱 소리는 멎지 않는다. 우리의 추억이 또 하나 쓰러져 간다. 나무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미 드러난 땅에는 붉은 흙과 간간이 키 작은 풀들만 있을 뿐이었다. 죽어가는 산림을 보며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산림을 죽이는 자들을 비방할 수조차 없었다. 안타까움과 속쓰림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창밖을 주목할 뿐이었다. 드러난 흙이 산이 흘린 붉은 피처럼 보였다. 아직 잘리지 않고 서 있는 나무들은 마치 벌을 받기 위해서 나와 줄 서 있는 죄지은 아이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기톱은 멎지 않는다.
정말 신도시를 세운다고 산림을 깎는다고 해도 우리에게 알려진 광교 신도시는 산림 속의 도시, 자연 속의 도시였다. “신도시를 세운다 하지만 친환경 도시다.” “자연은 보호해야 한다. 그것들은 인간에게도 유익하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산림을 백지 상태로 되돌리고 거기에 다시 인간들 손으로 인위적인 산림을 건설한다고 하면 그것은 친환경 도시일까? 인위적으로 배치된 산림이 자연이 스스로 배치된 자연만큼 그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자연은 아무렇게나 배치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나무들이 서 있고 풀들이 자라난다. 그리고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동물들이 모여들고 자연스러운 자연을 이룬다. 도시의 가로수들을 봐라. 그것들도 자연의 일부 산림의 일부지만 누구도 그것을 자연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인공물의 일부라고 여겨진다. 진짜 자연은 사라지고 인공자연이 들어찬다. 살아 있는 산은 죽고 죽은 산이 빈 자리를 채운다. 한쪽은 죽이고 한쪽은 살린다. 그러나 그 살리는 게 진짜 살리는 것일까? 전봇대를 세우는 것처럼 벤치 하나를 더 놓는 것처럼 인공물을 늘리는 것 뿐일 것이다. 우리는 추억을 잃고 우리의 교육받을 환경의 쾌적함을 잃었다. 허나 신도시가 건설되면 새로운 입주자들은 인공자연을 보고 친환경 도시라 혀가 헤지도록 칭찬하리라.
씁쓸함에 고개를 돌리고 교실을 돌아봤다. 여전히 소란스러운 교실이다. 먼지도 날리고 아이들도 먼지처럼 날아 다닌다. 잔뜩 들뜬 얼굴로 칠판이며 창틀을 닦고 있다. 그러나 내 귀에는 아까완 달리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사이로 나무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건물을 나섰을 때 젖은 흙내음과 숲내음이 났다. 평소 같았으면 기분좋게 숨이라도 크게 들여마셨을 테지만 오늘따라 그 내음이 숲의 피내음처럼 느껴졌다. 그후 방학이 시작되고 장마가 오면서 공사일정은 늦춰진 모양인지 숲은 여전히 삼분의 일만 대머리인 채로 남겨져 있었다. 이번 여름 그렇게 자주 내리던 비는 하늘의 눈물이 아니라 산의 눈물이었을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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