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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차마고도의 마지막 마방
  • 입상자명 : 박 단 비 서울 관악고 2학년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시계의 큰바늘, 분침이 10시 30을 지나 11시로 치닫고 있는 늦은 밤. 나는 마루에 홀로 앉아 뚫어지게 티비 화면을 바라보는 엄마의 옆에 슬그머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 시간대에 즐비한 오락프로그램들을 시청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평소 뉴스 소리만이 들리는 우리집에선 이렇게 앉아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을 보는 일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오랜만에 앉은 티비 앞에서 나는 ‘차마고도의 마방’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되었다. 내심 웃긴 오락프로그램을 볼 수 있기를 희망했던 나는 적지 않게 실망했다. 하지만, ‘차마고도-마지막 마방’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화려한 영상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오락프로그램과는 색다른 느낌으로 내 눈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렸다. 티비 속 화려한 영상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삶에 대한 부러움을 느끼게 했다. 오염되지 않은 선명한 자연의 빛깔들이 티비 속에서 살랑살랑 손짓을 해댔다. 다른 오락프로그램과는 상이하게 느껴졌다. 비록 내가 원했던 오락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차마고도.’ 차마고도는 茶馬古道, 혹은 Tea-Road로 표기되는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교역로이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문명의 통로이다. 실크로드 훨씬 이전부터 문명이 교류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길. 이 역사의 길 위에서 아직까지도 목숨을 건 여행을 하는 ‘마지막 마방’들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혼탁한 세상 속에서 순진무구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들은 ‘사람을 돕는 말의 무리’라는 뜻의 상업 집단이다. 그들이 다니는 길은 ‘조로서도’ 즉, ‘새와 쥐의 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높고 험준할 뿐만 아니라 극히 좁은 길이다. 얼마나 좁으면 새와 쥐의 길이라는 뜻까지 갖게 되었을까.
불안과 어려움의 길인 줄 알면서도 그 좁은 길에 목숨을 맡긴 채 살아가는 그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지구의 광활한 자연 그대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사는 그들, 내가 모르는 푸른 하늘과 그 위를 유유히 유영하는 하얗디하얀 구름, 금빛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노란 유채꽃의 진실된 색을 알고 있는 차마고도의 그들. 각박하고, 거무튀튀한 하늘 위 구름마저 쫓기는 듯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에 살고 있는 나로선 그들의 사소한 생활조차도 희망이고 꿈처럼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오랜 시간 동안 변화의 흐름으로부터 동떨어져 살던 그들은, 미개발된 삶 속에서 자신들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발견하고 그것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왔다. 그들이 수유차를 자주 마시는 것도 그러한 전통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워낙 높은 지대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 찻잎을 끓여낸 물에 버터를 넣은 수유차를 자주 마시곤 한다. 수유차는 보통 차에 비해 매우 높은 열량을 가지고 있어 마시면 몸이 따뜻해질 뿐 아니라, 찻잎에 함유된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하는 효과가 있기에 춥고 건조한 고원지대에 사는 그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차가 아닐 수 없다. 이 귀중한 차의 발견 외에도 그들은 다리를 다친 말을 재빨리 치료하는 방법, 독초를 먹는 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 높은 지대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방법 등을 발견했고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처럼, 아직도 어려운 방법을 통해 구시대적으로 생활하는 그들을 보면 아름다운 자연에 동했던 내 맘도 조금씩 사그라짐이 느껴진다. 나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내 몸을 흠뻑 적신 우악스런 기계들의 냄새는 그들과 내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난 이미 풍요로운 도시의 생활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나는 현저한 이방인이 될 뿐이다. 너무나도 우습다. 자연으로부터 나온 내가, 네가, 우리가, 자연과 접촉할 때마다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괴리감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 있는 것일까.
자연과의 일방적인 의사소통으로 우리가 얻는 것이라곤, 냉랭한 기계소리와 얼굴을 모르는 이웃사촌 같은 슬픈 것들 뿐이다. 물론 이를 통해 예전보다 더 나아진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가끔 이 나아진 ‘생활’이 과연 진정으로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곧잘 헷갈리고 만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는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는 풍요롭고 다채로운 생활을 택한 대신, 끝없이 높은 푸른 하늘을 잃었다. 하늘 스스로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밀어낸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어리석은 생물이다.
‘마지막 마방.’ 그들의 험난했던 장삿길은 이 프로그램의 촬영을 끝으로, 정말로 끝이 나버렸다. 그들의 장삿길은 더 이상 험난하지 않을 것이고, 장삿길을 떠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앞으로, 말 한 필에 자신들의 일 년 생활비를 모두 실은 채 장사를 가는 일은 진귀한 풍경으로 생각될 것이다. 조로서도로 불리던, 그들의 좁은 길은 세간 사람들에 의해 넓혀졌다. 더 이상 좁지 않으니 그들의 장삿길은 험난하지 않을 것이고, 마방의 마을이 관광화되어, 위험하게 외부로 나가 장사를 해야 할 이유도 없어졌다. 넓어진 길 위, 차의 등장으로 말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훗날 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고 사무치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자연과의 일방적인 의사소통으로 얻어지는 더 나아진 ‘생활’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로운 의사소통을 통한 활기차고 건강한 ‘생활’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 장면, 가파른 절벽을 타고 추락하는 부서진 돌덩어리들을 바라보던, 우리 삶 속 ‘마지막 마방’들의 슬픈 옆모습이 관광지 팸플릿 속 조그만 모습으로 아스라이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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