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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잃어버린 웃음을 찾게 해준 산
  • 입상자명 : 최 수 향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가만히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조용 하다 못해 숨소리조차 폭풍처럼 들릴까봐 숨죽여 지내던 우리 집에 가을 하늘처럼 밝고, 가을 햇살처럼 따스한 웃음이, 익어가는 밤송이 벌어지듯 입가에 헤헤거립니다. 아마 이런 것을 행복이라고 하나봅니다.
저희 엄마께서 태어나 자란 곳은 전라도 산골이랍니다. 9남매란 형제 속에 자랐고, 어려운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산속에서 자라는 나물들을 뜯어다 팔아 모르는 나물이 없을 정도입니다. 봄에는 고사리와 취나물·두릅, 여름에는 더덕·산도라지를 캐서 팔고, 가을에는 밤과 도토리를 주워다 팔아 생활비에 보태 쓰셨답니다. 이렇게 사시던 엄마께선 결혼을 하시고, 연년생으로 저희 삼남매를 낳으시고 평범한 다른 가정처럼 생활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남아 있던 엄마의 모습은 점점 웃음이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에 생기가 없으셨습니다. 그때는 모두가‘엄마 화가 나서 오래 가나보다.’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주부우울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집에서 말도 없이 혼자서만 지내는 엄마께서 신경 쓰일까봐 어린 저희 삼남매는 말도 못하고 눈치만 살폈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올 봄이었나봅니다. 먼 산에 연분홍빛들이 초록색지에 수를 놓을 때였습니다. 그 동안 엄마에 대해 말씀이 없으셨던 아빠께서 저희를 불러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애들아! 우리 매일은 산에 못 오르더라도 일 주일에 두 번 정도는 뒷산에 오르자.”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 엄마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엄마도 같이 가시는 거죠?”
저의 물음에 엄마께선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가족의 등산은 정말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처음 산에 오르던 날 엄마께서는 초등학생인 저희들보다 힘들어하셨습니다. 항상 집에만 계셨기에 무릎도 아프다고 하시고, 숨도 차다고 하시고… 하지만 아빠의 손 내밂과 동시에 엄마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습니다. 그렇게 첫번째 등산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뒤 엄마께서 아빠께 말을 건네시는 겁니다.
“그런데 뒷산 이름이 뭐예요?”
“잘 모르겠는데, 알아볼 게.”하시고 동네 어르신들께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그 산 이름이 뭔지 아세요? ‘심통산’이랍니다. 솔직히 말없이 화만 내던 엄마의 모습이 심통스러웠기에 속으로는 ‘엄마 닮은 심통산인가보다.’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몇달 만에 좋아진 엄마께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도 약속은 계속 지켜졌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밝아지는 엄마의 모습에 피곤해서 산에 가기 싫어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언니가 그러는 겁니다.
“일찍 일어나서 우리가 김밥이라도 싸가지고 갈까?”
귀찮은 생각에 저는
“아니, 오르고 내려오는데 두 시간이면 되는데 무슨 김밥, 언니도 참.”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투표로 하자며 남동생까지 셋이서 손을 들잡니다. 결국 언니와 동생이 찬성을 해서 솜씨 없는 저흰 산 정상에서 가족의 만찬을 즐기기 위해 김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쉬워 보이는 김밥이지만 자꾸 여기저기가 터지자 언니는 재료 다 넣은 김밥을 주먹밥으로 만들어 도시락을 챙겼습니다. 어설픈 준비지만 부모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에 오르는데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름 모를 꽃들도 보이고 시끄러운 산새들의 지저귐도 듣기 좋은 음악처럼 들려왔습니다. 저는 엄마 곁으로 다가가 쉴 새 없이 물어봤습니다.
“엄마, 저 꽃 이름이 뭐예요?”
“엄마, 저 나무는 무슨 나무예요?”
“엄마, 새 울음소리가 꼭 음악 같죠?”
엄마께서는 예전처럼 귀찮아하시지 않고
“저 꽃은 수향이 꽃인가보네.”
“저 새소리는 수향이 노랫소리.”하며 말을 받아주시고 제 손을 꼭 잡아주시는 겁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저희 삼남매는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놀기 바쁘고, 아빤 회사 일에 정신 없으셔서 엄마께서는 자꾸 혼자 지내게 되고, 그래서 엄마는 더 외로워지고 아파졌던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산을 오르다보니 엄마께서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나봅니다.
가족들과 산을 오르면서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왔을 때, 며칠 전의 일입니다. 가족들과 어김없이 산을 오르다가 도토리가 보이기에 언니와 동생이랑 도토리 많이 줍기 시합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모님께서는, “다람쥐 겨울에 먹을 것은 남겨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먹을 도토리만 정신없이 줍고 있었는데, 산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도 생각해 주는 부모님이 갑자기 멋지게 보였습니다. 다음날 엄마께서는 저희 삼남매가 주워온 도토리로 도토리묵을 만드셨습니다. 그러고는 웃으시면서 이웃집에 정성껏 만드신 도토리묵을 한 모씩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밝아진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집 뒷산 ‘심통산’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이름은 심통산이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열어주는 진심어린 산이네요. 고마워 심통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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