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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추억은 마음에 남기는 게 더 좋다
  • 입상자명 : 황 지 현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올 봄에 우리 가족은 담양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름다운 클래식을 들으며 호남고속국도를 타고 신나게 달리면서 굽이굽이 펼쳐진 산들과 벌판을 보며 와! 하는 탄성을 질렀다. 어떤 산은 혹이 두 개인 낙타 같기도 했고 어떤 산은 오랑우탄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산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을 붙이면서 즐겁게 갔다. 어느새 담양에 도착한 우리는 담양에서만 볼 수 있는 대나무숲인 ‘죽록원’으로 향했다.
“야, 죽록원이다!”
죽록원 입구에 도착한 나의 마음은 곧고 높게 뻗어 있을 대나무 생각에 흥분되어 있었다. 드디어 등산 시작! 열 걸음쯤 가다보니 양쪽 옆이 다 대나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키가 얼마나 큰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4m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옛말에 대나무를 선비로 비유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꼿꼿이 서 있는 것이 위엄 있게 느껴졌다. 마치 나라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 했던 선비가 대나무가 되어서 서 있는 듯했다.
“저기 좀 봐. 새가 대나무 줄기에 앉아 있어! 노래도 하는데?”
“정말, 부구, 부구, 부구. 이렇게 운다. 신기하지?”
“그래, 아! 맞아,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우산봉에서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이름이 뭐였더라. 붉은배새매!”
우리 가족은 즐겁게 재잘대며 걸어갔다. 나는 맑은 공기와 어우러진 한들거리는 대나무를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동화가 생각나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큰소리로 외쳤지만 다시 메아리쳐 오지 않아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고개를 젖히니 여기저기 맞붙은 대나무잎들이 마치 하늘이 초록색인 것처럼 보여주어 내 마음을 금방 풀어줬다. 엄마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마시고 내쉬었다. 조용히 바람과 얘기하는 나뭇잎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졌다. 마음에 담아두려고 하나하나 보고 가는데 갑자기 인상을 찌푸릴 일이 생겼다.
싱싱하고 푸른 대나무에 ‘세운이와 정연이 다녀감’, ‘지훈♥영애’, ‘우리 우정 영원히’ 등 온갖 낙서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판화 새기듯 뾰족한 걸로 판 듯한 낙서들도 많이 있었다.
“세상에! 누가 이렇게 몰상식한 짓을 한다니? 대나무가 많이 아팠겠다.”
우리는 안타까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상처가 많이 난 대나무를 쓰다듬으며,
‘대나무야, 많이 아팠지? 미안해. 널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해줘….’
하고 용서를 빌었다. 산책로 여기저기 낙서들이 많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대나무의 멋진 모습을 보며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는 건 좋았는데 다리가 아파 힘이 들었다.
“엄마, 다리가 아파서 못 걷겠어.”
“여보, 자기가 지현이 좀 업어줘요. 많이 힘든가봐.”
아빠는 다 큰 녀석을 어떻게 없냐고 하다가 못 이기는 척 업어 주셨다.
엄마는 우리의 모습이 다정해 보였는지,
“다음에 다시 올 계획이지만 혹시 못 올지 모르니 엄마, 아빠와 왔던 이곳을 마음속에 잘 새기렴. 나중에 우리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여기에 와서 함께 나눴던 추억을 되새겨봐.”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슬퍼졌다.
“아! 기념에 남게 어디다가 새겨 놓을까? 원래는 하면 안 되는데 너에게 추억을 선물 삼아 눈에 안 띄는 아래쪽에 살짝 써 놓자.”
하시며 가방을 뒤적거리셨다. 나는,
“엄마, 그럼 안돼.”
하고 말렸지만 엄마는,
“나도 알아. 이번 한 번만 아주 살짝 써 놓자. 응?”
하며 계속 볼펜을 찾으셨다.
‘허걱, 큰일 났네. 우리 엄마도 똑같네. 나무야, 이젠 더 미안하게 되었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대나무에게 용서를 구했다. 다행히도 필기도구가 없어 그냥 내려왔다. 엄마는,
“쓰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보다.”
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하셨다.
엄마를 보니 추억을 남기기 위해 대나무에 낙서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내 몸에 추억을 남긴다며 잔뜩 낙서를 한다면 어떨까? 추억은 눈으로 남기는 것보다 마음으로 남기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러면 마음도 아름답고 자연도 더 아름다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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