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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보물찾기
  • 입상자명 : 국 정 숙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계룡산 산자락이 강줄기처럼 굽이쳐 흐르는 가운데 마치 용이 사방을 감싸 안듯 사방이 짙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아담한 작은 마을 도곡리. 추석이 막 끝났음에도 매미가 울고 잠자리가 곧잘 날아다니며,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살랑거린다. 등산복 차림의 아버지가 가방과 두 손 그득히 상수리나무에서 열린 도토리와 잘 익은 밤, 어름이 주렁주렁 달린 나뭇가지를 안은 채로 방 안에 들어서셨다.
“숲에서 보물을 한가득 가져왔지 뭐냐.”
우리 마을 뒷산 고개에는 밤나무가 가득해서 추석철만 되면 곧잘 사람들이 밤을 털어가곤 했다. 산 속에는 상수리나무가 있어 도토리를 줍기 쉽고, 그 근처에는 솜사탕 같은 어름열매가 열려 있다. 아버지가 주워온 도토리는 아직 익지 않아 새파랬지만 밤은 반질반질한 황토 도자기처럼 익었고, 어름은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껍질을 반쯤 벌린 채 탐스러운 과육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도토리는 좀 더 익어야겠더라.”하시며 “숙아, 어름 한 입 먹어봐. 참 달다.”고 어름을 떼어 주셨다. 어름이 혀에 닿자마자 달콤한 과육이 입 안 가득 맴돌았다. 풋풋한 숲 냄새도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다.
어름의 까만 씨앗을 뱉어내며 달콤함을 즐기는 동안, 문득 지난 2006년 여름에 오서산 자연휴양림으로 캠프에 다녀왔을 때가 떠올랐다.
환경연합에서 일하시는 대학 신문사 선배가 대전충남 생명의 숲에서 주관하는 ‘2006 어린이 여름 숲 체험 캠프’에 자원봉사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당시 나는 한창 여름 수련회와 기자 활동으로 정신없었지만, 도시의 어린이들에게 숲을 체험하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이 캠프의 취지에 공감하여 선뜻 하겠다고 나섰다.
8월 1일 이른 아침, 나는 대전지역의 초등학생 몇명과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함께한 가운데 오서산 자연휴양림으로 캠프를 떠났다. 출발과 동시에 주영이라는 꼬마 아이가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며 울어대는 통에 가는 내내 아이를 달래며 ‘괜히 왔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명대계곡이 소폭포를 이루며 흐르고 낚시터로 유명한 정현 저수지와 여섯 개의 줄기가 모아 자란 육소나무가 반기는 오서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자 주영이는 울음을 그쳤고, 나도 차 안에서 달려 나와 갑갑함을 벗고 맑고 시원한 공기를 가득 마시며 푸르름을 만끽했다.
숲 체험 캠프는 그 해에 6번째를 맞아 프로그램마다 참 알찼다. 아이들과 나무 목걸이를 만들어 자기소개를 하기도 하고, 휴양림에 마련된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했다. 저녁에는 야간 담력 훈련차 아이들과 휴양림 숙소 뒤의 산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아이들이 담력 훈련인데 귀신이 없어서 심심하다며 다음번에는 꼭 귀신을 넣어달라고 하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보다 숲을 가깝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숲에서 저마다 크고 작은 잎들을 모아서 인디언처럼 귀에 꽂거나 나뭇가지들을 엮어서 왕관을 만들었다. 왕관을 쓰고 굴참나무 숯으로 서로의 얼굴에 안경도 씌워주고, 얼굴에 이름을 쓰기도 하고, 수염을 그리기도 했다.
모든 것들이 즐거웠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숲속 보물찾기’였다. 나에게 보물찾기란 상품을 타기 위한 놀이였다. 선생님들이 미리 숨겨놓은 하얀 쪽지를 찾아 그 종이에 적힌 연필이나 공책 따위의 상품을 받는 놀이가 바로 보물찾기였다.
그러나 숲 체험 캠프의 아이들은 벌레 먹은 나뭇잎, 곤충, 새의 깃털,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물건, 검은 빛깔의 돌멩이, 사람이 버린 물건, 자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물건 등을 찾는 것이 보물찾기였다. 그래서 ‘이런 보물찾기는 아이들이 싫어할 텐데….’하고 걱정했으나 아이들은 곧,
“선생님, 이 나뭇잎이 꼭 우리 엄마 손 같죠?”
“동근이가 사슴벌레 잡았어요!”
하며 숲속에 가득한 보물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오기도 하고, 처음 보았을 법한 사슴벌레 같은 곤충도 무서워하지 않고 잡아왔다. 아이들이 기존과는 다른 보물찾기를 재밌어 하는 모습에도 놀랐지만 숲의 나뭇잎이나 돌 등을 아이들의 시각으로 다양하게 바라보는 모습에 더더욱 감탄했다. 더불어 나는 초등학생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컴퓨터나 게임기에 빠져서 동심을 잃지 않았구나 하고 몸소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가 숲속 보물을 찾았다는 그 한 마디에 그 때의 보물찾기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손에 각자의 보물을 주워들고 기뻐하는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단단하고 곧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높게 팔을 뻗은 숲, 제멋대로 자리한 바위가 멋있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과 새소리가 평온하던 자연휴양림.
그 곳이 부럽지 않은 이 시골 동네에도 뜨겁던 여름을 보내고 파란 가을 하늘과 어울려 넘실대는 산등성이가 숲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내고 있다.
오대산처럼 보물을 숲에 한가득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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