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할머니는 라디오 속에서 숲을 꺼낸다
전파를 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잎사귀들이
어두운 방 안 가득 채워지고
할머니는 허공에 손을 뻗어
오래된 나무의 살결을 더듬는다
라디오에 잡음이 서릴 때면
숲은 바람을 맞이한 듯 낮게 흔들리고
덩달아 떨리기 시작하는 할머니의 호흡
할머니와 숲의 비밀스러운 소통은
포클레인이 나무들의 긴 목을 부러트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라지는 숲을 힘 없는 몸으론 지킬 수 없어,
할머니는 나뭇가지 사이에 녹음기를 걸어두었다
개발공사가 잠시 멈춘 밤이면
상처입은 나무들의 신음소리부터
그것을 위로하는 주변 나무들의 고요,
흐르는 바람이 연주하는 풀들의 푸른 음역들,
잎새들이 땅 속으로 삭는 소리까지 녹음되었다
할머니는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
나무들을 위로하듯
오늘도 천천히 숲을 펼치신다
테이프에 새겨진 바람의 결이 천천히 흘러내리며
방 안 곳곳에 숲의 내음을 퍼트린다
할머니와 함께 자라난 오동나무 장롱에도
어린 나무들이 솟아오를 것만 같이 환하게 결이 빛나고
계속해서 잎사귀를 뱉어내는 라디오
할머니의 방을 넘어 거실까지 점점 번져오는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