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숲은 일어선다.
가지를 세차게 꺾는 태풍을
원망도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키를 세울 줄 안다.
솔숲은 현명하다.
고집을 세울 땐 강철보다 빳빳하게
햇살과 바람을 탈 땐 양떼구름 보다 보드랍게
독한 막걸리가 뿌리를 적셔도
취하지 않는 선비의 기품과
묵은 잎이 채 지기 전에 솔잎을 싹틔우는
지혜도 갖췄다.
거죽을 치장하기 보다는
옹골차게 나이테를 늘리고
때가 되면 도편수의 손끝에서
하늘을 받치는 대들보로 탄생하는,
화백의 붓끝에서
묵향으로 부활하는
아아, 반만년을 이어 온 겨레의 곧은 기개여!
오늘도 나는
철새처럼 지친 날개를 접고
안면도 솔숲에 착륙한다.
솔바람 소리로 귀를 씻고
폐 속 가득 송진 내음을 채운다.
바다보다 깊고 검푸른 사랑을 갈무리하고 나면
어느새 내 몸은
한 그루 강직한 곰솔이 되고!
밤하늘에 별이 뜨면
융단 같은 꿈을 깁는
어부가 되어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