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입선 아버지의 산
  • 입상자명 : 송 유 라 경기 김포 풍무고 2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산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나는 종종 자문해 보곤 한다. 내가 산을 사랑해 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건데 내 대답은 항상 ‘아니요’였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숲을 좋아했고, 크게는 북쪽 오지의 툰드라에서부터 작게는 어느 시골 마을 어귀에 선 고목나무까지 나무라는 존재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산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마 나의 아버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족보다 산을 더 사랑했던, 주말만 되면 어김없이 값비싼 등산용품을 챙겨 새벽같이 집을 나가곤 했던 아버지의 뒷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산은 항상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아가는 존재였고, 나 자신을 부정하게끔 만드는 장애물이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했던 ‘등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 가며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정상에 도달해서는 나무와 돌로만 가득 찬 풍경을 망막에 흘린 다음 허무한 사진이나 몇 방 찍고 또다시 반은 기듯이 반은 구르듯이 내려와 집으로 가는 행위는 내게 가장 큰 미스터리였다. 이해할 수 없는 크나큰 물음표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내 마음속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의구심과 분노가 점점 커져 갈 무렵, 아버지는 다리 수술을 받았다. 고관절 수술이라고 했다, 인공 관절을 삽입하는 수술.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아버지에 대한 염려와 동시에, ‘이제 아버지가 산에 가지 않겠구나.’ 하는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생각이었다.
내 간절한 바람대로 아버지가 산에 가는 일은 점점 뜸해졌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사퇴한 것이다. 아버지의 사퇴로 우리 가족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그러자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의 마음속에서는 점점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식어갔다. 항상 집에만 있는 무기력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느낀 실망감과 함께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나는 점점 더 가족보다 내 친구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고, 결국 집에 있는 것 자체를 기피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갑작스레 등산을 가자고 했다.
차에 타는 그 순간부터 나는 산에서 겪을 답답함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한숨을 쉬었다. 정말 예상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곳이었다. 이름 모를 그 산을 오르면서, 등을 불친절하게 찔러 대는 햇빛과 산소에 대한 갈증으로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산을 오른다는 것이 너무 싫고 짜증이 난 나는 두 눈을 꼭 감으며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내 손을 누군가가 잡아온 것은. 그 후텁지근한 손의 열기에 나는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아버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유 모를 자유로움으로 안에서부터 환하게 빛이 나는 듯한 그 얼굴.
“많이 힘들지?”
아버지의 그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백지가 되어 버린 나의 머리에 아, 하는 얼빠진 소리만이 맴돌았다.
“우리 조금만 참자.”
그리고는 내 등을 툭툭 쳐준 뒤 앞서 나아가는 아버지의 등을 멀뚱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그 등은 힘 있어 보였고, 듬직해 보였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나만 아픈 줄 알았다. 나만 힘든 줄 알았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리려고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산의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하얗게 불타는 보석 같은 공기가 내 안의 어둡고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푸른 희망을 툭, 하고 건드리고, 나는, 내 안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문득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옆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솟아 있는 나무들을,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하늘과 몽글몽글한 구름들을 눈 안에 담았다. 행복해 보였던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제야, 왜 아버지가 산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이 바람에 맞춰 춤을 추고, 햇빛은 달콤한 손길로 그들을 어루만지고, 발에 감기는 대지는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곳. 그 안에서 나는 온몸이 파묻힐 듯한 편안함과 안도를 느꼈다. 그리고 갑작스레 솟아오르는 깊은 애정을 느꼈다.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 감정의 발로에 나는 의아해하다가, 그리고 당황해하다가, 결국 힘차게 웃어 버렸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