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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자연과 친구하다
  • 입상자명 : 박 나 현 부산 장안중 3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작년 6월,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오던 바로 그 주에 아빠는 무언가에 끌린 듯 집 뒷산으로 올라가셨다. 등산이라도 하시려나 싶었는데, 다음날 아빠는 삽을 사 가지고 가셨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기만 했다.
한 달쯤 뒤, 아빠는 우리를 산으로 부르셨다. 잡초가 우거진 버려진 땅에 기둥도 세우고 돌들을 갈아엎어 생명이 자랄 수 있는 밭으로 바꾸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날부터 엄마도, 나도, 동생도 아빠도 산에 올라가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우선 골목길 옆에 작게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온다.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여 끝까지 올라가면 갈림길인데, 왼쪽 아래로 빠지는 길로 나무들과 함께 걸어가면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여긴 산책로로도 좋다. 어쨌든 거기서 앞길로 걷고 걷고 또 걸어 파란 기둥 앞에서 좌회전하면 드디어 아빠가 가꾸신 땅이 나오는 것이다. ‘아빠의 땅’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땅주인이 아빠에게 밭을 가꾸는 것만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란다.
어쨌든 우린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밭 지도는, 대충 이렇다. 입구에서 조금 앞으로 걸어가면 농기구를 놓아두는 창고 비스무리한 천막이 있고, 그 옆에 웅덩이가 있다. 처음엔 수풀이 너무 우거져 있었기 때문에 웅덩이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우리가 졸라서 아빠가 낫으로 풀을 다 쳐내셨다. 겨울엔 위험하다는 만류를 뒤로하고 얼음판 위에 슬쩍 올라가 보기도 하고 봄엔 개구리를 구경하면서 잘 놀았다.
왼쪽 그물로 쳐진 경계 사이의 작은 나무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본격적인 밭이다. 좁은 밭에다가 딸기, 토마토, 오이, 호박, 상추, 콩, 깨 등 알뜰하게 심었다. 밭 한쪽 구석엔 그늘막이 있어,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서 먹거나 바로 보이는 나무들을 구경했다. 우리는 놀 거리를 찾다가 그물 그네를 생각해 내기도 했다. 아빠는 당장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 그물을 매어 주셨지만, 너무 스릴이 넘친다는 이유로 곧 철거되었다.
밭에서 벗어나 조금 더 위로 가 보니 고속도로가 공사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처참했다. 푸른 신록을 베어버리고 그곳에 도시의 확인도장이라 할 수 있는 고속도로를 짓다니. 누렇게 벌거벗은 산꼭대기를 보고 있자니 내 가슴이 다 아파왔다. 딱딱하게 덮어버린 콘크리트와 포크레인들은 푸른 본래의 숲색을 잃어버려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골목을 들어서서 고개를 들어보면 고속도로의 한 귀퉁이가 산과 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산이 만약 말을 할 줄 안다면 얼마나 아파했을까. 단지 인간의 필요 때문에 산 가운데에 고속도로를 놓는다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산 하면 아픈 기억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병아리 사건이다. 우린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몇 마리를 사다가 버려진 서랍을 주워 병아리를 넣고서 ‘동물들은 자연에서 놀아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으로 판자를 하나 덧씌워 텃밭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산에 올라가 판자를 들춰보니 병아리는 모두 없어져 있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슬펐는지 모르겠다. 아빠 말씀으론 산짐승들이 병아리를 물어간 것 같다고 하셨다. 산짐승들을 원망해 보기도 하고, 그냥 집에서 기를 걸 하고 후회도 했지만, 동물들이 태어난 자연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 병아리들이 살아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젠 나의 마음도 성숙하여 아픈 기억으로 남았던 귀여운 병아리들을 작은 추억으로 묻어두고자 한다.
우리 가족과 자연의 만남의 장, 텃밭. 텃밭이 없었더라면 산에 올라가 새소리를 듣고, 그 새가 어디 숨었나 찾아보고, 식목일엔 각종 나무를 심는 우리 가족만의 작은 행사를 열고, 우리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보기도 하는 재미를 어떻게 느꼈을까. 자연과 함께한 그 많은 추억들을 다 어디서 만들 수 있었을까.
지난 몇 년 동안 밭을 가꾸면서 생명에 대한 신비로움을 알고, 자연과 얼굴을 맞대고 놀기도 했다. 우리는 아주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우리 밭은 다른 밭과는 달리 잡초가 무성하다. 이유는 김을 매지 않고 약을 치지 않기 때문이다. 고라니가 가끔 나타나 농작물을 뜯어먹으면, 우린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양파나 고추, 호박 같은 야채들을 캐 보면 모양은 조금 못났을지라도 다른 밭 못지않게 많이 거둔다. 또 반찬을 만들어서 먹어보면 맛도 매우 좋다. 나름의 철학대로 자연을 배려하다 보니 자연도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아 감사할 뿐이다. 언제까지일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밭을 가꾸는 동안은 우리의 산을 더럽히거나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을 조심스럽게 약속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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