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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가족과의 휴가에서
  • 입상자명 : 김 민 주 경기 평택 송탄제일고 1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이번 휴가는 영양으로 갈 거야.”
“영양? 영양이 어디야? 양양이 아니고 영양?”
“어. 저어기 산속 시골에 집 한 채 있는 곳으로 갈 거야. 니가 좋아하는 시골에다가 뒤에 산도 있고 근처에 계곡도 있어. 사람도 아무도 없고 집주인밖에 없는데 마주칠 일 없으니까 괜찮지? 거기가면 우리 가족밖에 없을 거야.”
나는 솔직히 귀찮았다. 몸이 물에 흠뻑 젖은 이불처럼 축축 늘어지고, 무겁고, 무기력하고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 뿐이었다. 고등학생의 여름방학이란게 다 이런 건가? 중학생 때는 방학이 온전히 내 것인 것만 같았는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처음 맞은 방학이란 나에게 2주일의 쉬는 시간을 줄 뿐이었다. 그래서 난 그 2주일이라도 좋으니 그때만큼은 집에서만 쉬고 싶었다. 정말 아무데도 안 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지옥 속으로 끌려가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일주일을 더 학교에서 보냈더니 또다시 쉬는 주간이 다가오고 월요일이 되기 이틀 전. 아빠가 차에서 무심히 내게 건네는 말이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시골로 휴가를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싫다고 했다. 귀찮은 것도 한몫했지만 지금 우리 집 상황이 휴가나 갈 만큼 여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회사 다니면서 술을 많이 마신 덕에 간경화라는 나쁜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아빠는 쫓겨나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엄마랑 아빠는 날이 갈수록 말다툼이 심해졌고 엄마는 주로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난 조금 더 엄마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 편에서 생각해보면 가만히 집에만 있어도 모자랄 판에 돈이 많이 드는 휴가를 가자고하니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매년 가던 휴가를 자기 때문에 못 가게 되어서 미안해할 아빠를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그런데 의외로 엄마가 흔쾌히 허락을 한 것이다. 그래서 당장 월요일에 갈 준비를 하게 됐다.
월요일 아침 6시. 상쾌한 날씨와 새들이 기분 좋게 지저귀는 소리는 언제나 날 행복하게 해준다.
산이라면 다들 등산할 수 있는 그런 큰 산들을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빌라 바로 뒤에 있는 자그마한 뒷산을 떠올린다.
우리 지역에 사는 애들 중에 밤에 개구리와 귀뚜라미,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드는 학생은 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추억이 가득 담긴 뒷산을 한 번 쳐다봐 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히 준비한 결과 다섯 식구가 1시간 만에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나만 걱정거리를 한 아름 안고서 출발했다.
장장 9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면서 많은 풍경을 보았지만 역시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파란 하늘 아래 가득 찬 웅장하고 위엄 있는 산들이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입가에 미소를 띠고 도착한 곳의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온통 산이었다. 깨끗한 공기와 푸르른 산. 그리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에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었다.
“와아! 우와! 멋있다.”
이 말 외에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그저 감탄만 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 가족이 며칠 동안 머무를 집에 갔는데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사실 아빠도 잘 몰랐던 것이다. 얘기만 듣고 그대로 전해줬는데 나는 또 실컷 기대하고 실망한 것을 아빠 탓을 해버리고 말았다.
말하고 나서는 아빠한테 미안해했지만 입 밖으로 끄집어내지는 못했다. 속으로만 ‘아빠 미안해. 여기 오니까 엄청 좋다. 아빠 고마워.’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도착한 집을 보면 ‘아, 시골집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솥으로 밥과 국 등 다른 요리를 해먹어야 하고, 땔감이 한쪽 구석에 쌓여져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뒷간이 있었다는 것! 나는 괜찮았는데 엄마랑 동생은 불편할 거란 생각 때문인지 투덜거리면서 짐정리를 했다. 모두들 정리하느라 정신없을 때 살짝 빠져나온 나는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니 사방이 고추밭으로 펼쳐진 샛길이 나왔다. 그리고 그 좁은 길 옆에는 작은 물길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만약 저 고추밭들이 잔디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정신을 못 차리고 잔디 위에서 뛰어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약간 경사가 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끝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걷다 보면 내 주위를 고추잠자리들이 빙빙 돌며 날아다니고, 고추밭의 경계선엔 보기만 해도 귀여운 꽃들과 다른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넋을 놓고 걸어가다 보니, 노란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흔한 들꽃이고 우리 동네에도 피어 있을 법한 꽃이지만, 한데 모여 있으니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 가슴속에 실타래처럼 뭉쳐져 있는 나쁜 생각들과 스트레스가 모두 풀린 기분이었다. 노란 꽃밭 뒤로는 시원스레 자리 잡은 커다랗고 푸른 산이 있어 풀린 가슴이 뻥 뚫려 버렸다. 감동 그 자체!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더니 아빠가 올라오셨다. ‘아. 시간이 많이 지났나 보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아빠가 내 옆에 서 계셨다.
“여기 오니까 어때?”
아빠가 물어왔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미적지근하게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빠가 하는 말에 대답 한마디 하지 못하고 머릴 숙이고 고갯짓으로 대신했다. 소리 내어 대답한다면 내 떨리는 목소리에 묻어 있는 울음이 들릴 것 같아서였다.
“아빠는 항상 너희들한테 미안해. 아빠도 너랑 가영이, 보영이 그리고 엄마한테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정말 원 없이 해주고 사주고 싶은데 그렇게 못해주니까 너무 미안하게 생각해. 아빠 마음 알지? 우리 기둥은 나중에 돈 잘 벌고, 좋은 신랑 만나서 엄마처럼 고생하면서 살지 말고 꼭 좋은 사람 만나서 편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해. 아빠가 우리 기둥 많이 의지하고 기대니까 이런 얘기도 하고 그런다. 아빠는 니가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조금 씁쓸했어. 성공해서 서울에 있는 좋은 집에서 살려고는 안 하고 이런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하니까 아빠 마음이 좀 착잡하더라. 아빠가 못났으니까 너희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근데 여기 와보니까 니가 이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좋아하는 모습도 보고 여기 오길 잘했다 싶고, 나중에 아빠랑 엄마, 더 나이 들면 이런 시골에서 살까? 음, 아빠는 고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변변치 못한 직장생활 했지만 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빠가 되려고 열심히 살았어.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고. 그러니까 기둥이 아빠를 좀 이해해줬으면 해. 우리 기둥이 알아서 잘할 거 아는데, 그래도 아빠도 사람이다 보니까 속상한 일도 있고 그런 거잖아. 아빠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우리 기둥? 사랑해. 이제 갈까? 밑에서 다 기다리고 있어.
가서 저녁 먹자.” 앞서가는 아빠의 쓸쓸한 등을 보고 뛰어가 힘주어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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