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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우정은 산을 타고
  • 입상자명 : 정 혜 랑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갔다. 평소에도 단합이 잘 안되던 우리 반은 체험학습 장소를 고르는 데에만 반나절이 걸렸다. 스케이트장, 수족관에 가자 또는 공연을 보자는 등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결정을 내린 사람은 우리 반 선생님이었다. “너희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를 못하니 내가 막무가내로 정하겠다. 우리가 갈 곳은 청량산. 어때? 신나지?” 이어지는 한숨소리와 함께 우리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학교에서 무려 12시간 이상이나 보내는 우리들에게 모처럼의 체험학습이라는 자유시간이 찾아왔는데 마음대로 결정해 버린 선생님이 야속하기만 했다.
드디어 체험학습 당일 날, 우리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기쁨을 만끽하며 우리 반이 모이기로 한 장소에 집합했다. 정말 오랜만에 와 보는 산이었다. 산은커녕 평소에 햇빛조차 볼 수 없는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였다. 힘든 등산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출발하려던 나를 선생님이 부르셨다. “혜랑아, 지영이가 친구가 없으니 너가 같이 데리고 가렴.” 지영이는 어릴 때 사고를 당해서 말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혼자 다닌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무관심한 요즘의 우리들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 동행이었지만 어느덧 지영이와 30분가량 산을 올랐다. 나는 지영이의 걸음에 맞추어 느리게 걷느라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미 앞을 지나가고서 뒤처져 걸었다. 결국에는 형체마저 아른거릴 때 지영이가 갑자기 멈추더니 솔방울을 가리켰다. 나는 의아해하며 지영이를 바라보았다. 지영이는 천천히 솔방울을 두드리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작고 가녀린 손에는 솔방울이 두 동강이 난 채 들려 있었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덩달아 웃으며 지영이와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평소에 의욕이 없고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해서 언제나 동떨어져 있던 지영이가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을 해낸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처음에는 걸음이 느리던 지영이가 이제는 속도를 내어 바람을 가르듯 정상을 향해 달려나갔다. 나는 혹시라도 지영이가 길을 잃으면 어떡하나 헉헉대며 그 뒤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 숨이 가슴까지 차올라 고개를 숙인 나에게 지영이가 손을 내밀었다. 지영이는 휴일이나 학교에 가지 않을 때 산에 온다고 한다. 산에 오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정화된다며 아이 같은 순진한 웃음을 건넸다. 학교에서 틀에 박힌 규칙에 갇혀 감정이 메마른 우리에게 산은 잠시나마 안정과 순수함을 되찾아 준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도화지에 점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때묻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지친 일상에 어느덧 친구들의 속이 아닌 외면만 보게 된다. 진정으로 마음을 통해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산은 이런 마음의 의사소통을 다시 되찾게 해준다. 지영이와 나는 나란히 걸었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어느덧 발을 맞추어 걸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느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내 곁을 떠나 있던 나의 옛날 모습이 돌아와 지금의 나와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산이 지영이와 나의 사이를 좁혀 주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힘껏 “야…호!”를 외쳤다. 우리 둘의 목소리가 합해져 큰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덩달아 나의 마음도 울렸다. 반성과 사랑이 가슴 깊이 울려 퍼졌다. 내려오면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너무 좋았다. 뒤를 돌아보니 산이 나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 듯했다. 또 오라고 다음에는 같이 오라고…. 산을 떠나는 육체는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올라가기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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