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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할머니 나무
  • 입상자명 : 박 재 희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청설모가 내 발소리에 놀라 날쌔게 나뭇가지를 타고 뛰어올라간다. 다람쥐처럼 털에 윤기는 없지만 그래도 놀라서 뛰는 모습이 귀엽다. 할머니나무까지 가는 숲속 길 가장자리엔 탐스런 밤송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앗 따거!”
양볼이 뿔룩해져서 쩍 벌어진 가시갑옷 속에 윤기나는 밤송이가 너무 예뻐서 덜컥 집어들었다.
“아이구, 괜찮니 재희야? 아빠가 주워줄게.”
욕심이 앞선 내게 아빠는 발로 밟아서 무시무시한 밤가시를 벗겨 먹음직스런 속알맹이를 까주셨다.
지리산 골짜기가 고향이신 아빠는 어린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며 즐거워 하셨고 언니와 나는 뽀드득 소리를 내며 속살을 깨물었다. 그런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나보다. 속이 빈 쭈그렁밤이 더 많아서 진작 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고보니 할머니나무에 물을 주고 간 것이 벌써 한 달 전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뒤편에는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 아빠는 아침마다 그곳에서 운동을 하시며 하루를 시작하신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다보면 마치 어느 산림휴양지 콘도에 놀러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그 짙은 푸른색이 너무 좋다. 덕분에 서울에 살면서도 전원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큰 자랑거리이다. 그래서 삼십 년 가까이 다 되어 곳곳에 벗겨진 페인트며 콘크리트에 금이 간 늙은 아파트이지만 우리 가족은 아니 엄마 아빠는 이곳을 떠나실 생각은 없으신 것 같다.
아빠는 매일 아침에 운동 가시는 그 산 한가운데쯤 듬직한 나무 밑에 할머니의 유품을 묻어놓으셨다.
“자, 이제 이 나무는 할머니 나무야. 늘 우리를 보고 계시겠지?” 이렇게 하시며 주변의 가시넝쿨을 정리하시고 마지막에 물도 넉넉히 주셨다. 아마 할머니께서 우리 곁에 인 계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으신 것 같다.
아빠는 정말 효자아들이셨다. 매일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시고 자주 찾아가서 말벗을 해드렸고 그런 아빠는 언니 오빠와 함께 나에게는 늘 본보기가 되셨다. 그런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 아빠는 너무나 슬퍼하셨고 그 모습을 보는 우리도 많이 울었다.
살아계실 때 할머니는 늘 큰 목소리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셔서 사실 우리는 할머니를 무서워했다. 그런 할머니께서도 가끔은 “에고 내 똥강아지가 핵교서 공부를 겁나게 잘했다믄서!” 하시며 고쟁이 안쪽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 주셨다. 그때는 할머니의 깊은 정
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늘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살아계실 때 효도해라’는 말은 역시 진리인 것 같다. 아빠는 아침마다 이 할머니나무에 와서 맑은 공기와 소리와 함께 힘을 얻어 하루를 시작하신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에는 이곳에 온다. 할머니나무 밑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열면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부지런히 먹이를 주워 모으는 청설모의 발자국 소리, 찌르르 찌르 씩씩한 풀벌레 소리, 조용히 줄기를 뻗어 내리는 이름모를 들풀들… 그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리한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 숲에 대한 고마움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아마존 강 유역의 밀림지역이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그곳의 훼손으로 우리 인간은 또 얼만큼의 피해를 보고서야 후회할까. 그런가하면 매년 봄에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황사의 근원지는 중국의 부구치 사막이라는데 원래 그곳은 산림이 울창하였지만 마구잡이로 개발을 하여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다니 인간들은 생명의 숲에 돌이킬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아빠! 다음에 올 때는 이 나무에 빨간 단풍이 주렁주렁 열리겠네요?” 작년 가을에 할머니나무 옆에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던 단풍나무를 생각하며 아빠와 난 사각사각 숲길을 걸어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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