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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우리 나무
  • 입상자명 : 최 현 희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7년 전쯤, 처음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2층에 살았을 때이다. 이삿짐을 풀기 전, 넓은 거실에서 베란다 밖을 쳐다봤을 때는 참 삭막했다. 작은 정원이라고 만들어놨지만, 겨우 나무 서너 그루에 잔디만 덮여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새 집에서 방방 뛰어다니며, 하루하루 집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쉬는 날이라며 마음 놓고 쿨쿨 자고 있을 때, 엄마가 나무 심으러 가자며 흔들어 깨우셨다. 순간 호기심에 벌떡 일어나 엄마를 따라 나섰다. 동생도 함께 손잡고 신나게 뛰어나갔다.
우리가 나무를 심을 장소는 바로 우리 베란다 앞 작은 정원이었다. 이미 여러 명의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나와서 삼삼오오 모여 좋은 자리를 맡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유인 즉, 아파트에서 환경친화 목적으로 어린 나무들을 나눠주어 원하는 곳에 심을 수 있게 식목일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얼른 우리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풀썩 주저앉고서 자그마한 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동생과 은근한 경쟁심이 붙어서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 나무의 뿌리가 내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엄마가 잠시 물을 뜨러 간 사이 우리 둘은 얼렁뚱땅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아니 심는다기보다는 묻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판 쪽의 땅이 더 깊었는지 아니면 동생 쪽의 땅에 돌이 많았던 건지 우리의 나무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미 뚝딱뚝딱 해치워버려서 덮어버린 흙을 다시 파헤쳤다간 나무가 툭 쓰러질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고민하던 찰나에 엄마께서 물을 주시면서 막대기로 지탱해주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어쨌든 우리는 엄마의 한 마디에 나무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 사라져서 얼른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반나절을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경비아저씨께서 나와 동생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갖고 오셨다. 큼지막한 정자체로 ‘최현희, 최영준’ 적혀 있는 이름표는 깔끔하게 코팅까지 되어 있었고, 양끝에는 구멍을 뚫어 연결할 수 있게 철사도 달려 있었다. 경비아저씨는 “현희, 영준아, 너희가 오늘 심은 나무에게 이 이름표를 붙여주렴. 그리고 잊지 말고 정원 쪽을 걸을 때마다 나무에게 말도 걸어주고, 곧게 크는지 잘 보살펴 주면서 나무와 친구가 되어주렴.” 진지한 경비아저씨의 눈을 보고 나는 “네!” 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TV에 푹 빠진 동생을 뒤로 한 채 나 혼자 이름표를 들고 우리 나무에게 찾아갔다. 앙상한 나무는 마치 젓가락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면서 아프지 않게 헐렁하게 철사를 묶어주었다.
식목일이 지나고 가끔씩 정원 쪽 길로 갈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새 우리 나무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문득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약간은 비뚤어지게 자리 잡아서 S자를 그리면서 자라는 나무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바로 우리 나무였다. ‘최현희’ 라는 이름 석 자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 나 때문에 저 나무는 곧게 자라지 못하는구나.’라는 미안한 마음에 나는 나무를 심은 이후에 처음으로 나무에게 다가가 “미안해, 그렇지만 앞으로 자주 와서 네가 외롭지 않게 해줄게.”라고 말해 주며, 지지대를 다시 한 번 고정 시켜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피아노 학원을 갈 때마다 우리 나무를 한 번씩 둘러보며 “안녕 나무야, 오늘 날씨는 정말 좋다. 너도 기분 좋지?”라는 식의 짧은 인사를 건네곤 했다. 나의 관심 덕택인지 나무는 비뚤어진 몸으로 쑥쑥 잘도 컸다. 제법 새싹이 돋고 푸르른 나뭇잎이 만발을 이룰 무렵, 나는 바로 옆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 간 뒤 한 달 정도는 너무나도 우리 나무에 정이 들어서 일부러 그 정원에 가서 나무를 보곤 했다. 비오는 날이면 처량하게 흩어지는 빗방울과 하나가 되어 쓸쓸해하고 시원한 가을날 바람결에 살랑살랑 춤추던 모습들, 어두운 밤길에 무서워서 발걸음을 빨리 할 때면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괜찮아’라며 웃어주던 모습, 나의 걱정과는 달리 너무나도 무럭무럭 잘 커주던 모습들…. 그런 모습들이 아른아른거려서 그 작은 정원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중학생이 되고, 또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우리 나무는 차츰차츰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우연하게 그 정원 길을 걷게 된 적이 있었다. 새로 사귄 친구의 집에 들렀다가 돌아 나오는데, ‘내가 어렸을 적엔 정말 이 길을 많이 걸었었는데.’라며 추억에 잠기다가 번뜩 우리 나무가 생각난 것이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의 우리 나무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나도 나무들이 다 커버린 것이다. 행여 옛날 그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아서 뽑아버리고 새로운 나무를 다시 심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쯤, 어떤 한 나무가 밑동에서 조금 올라간 부분이 S자 모양으로 꺾여 있었다. 너무나도 반가워 나는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나무는 ‘너무나 오랜만이야, 내 친구. 나 이렇게 멋지게 자랐어!’라고 자신 있게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운명의 반쪽을 찾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콘크리트 벽, 시멘트 바닥, 온통 차가운 인조건물들 사이에서 내가 심은 작은 생명 하나가 이토록 많은 시간이 지나도 나에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 오랜 시간 친구를 찾지 않았음에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 저 편을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우리 나무였다.
오늘같이 더운 날에도 어제같이 소나기가 퍼붓던 날에도 변덕대는 날씨 속에서 홀로 의연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나의 친구를 생각하면, 내 입가엔 어느새 알 수 없는 미소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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