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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내 마음속 동경의 그곳
  • 입상자명 : 박 지 윤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 그곳은 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동경의 마을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영원히 잠들고 계신 곳이기도 하며 현재 90세가 훌쩍 넘으신 증조할머니께서 계신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여느 산골마을과 다를 바 없지만 내게는 아주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어릴 적에 증조할머니를 뵙기 위해 부모님을 따라 밀양에 가는 날이면 나는 차 안에서 멀미를 심하게 하곤 했었다. 지금은 멀미가 사라졌지만 체력이 약했던 어릴 적에는 우리 집에서 한참이나 먼 증조할머니댁에 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여차여차해서 장시간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증조할머니댁은 어린 나의 눈에 그저 초라한 시골집에 불과했다. 증조할머니댁에는 자그마한 텃밭과 옛날에 쓰다 만 농기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윗집에는 소 두 마리가 ‘음메…’ 하며 날 바라보고 있었고, 맞은편 집에는 된장과 고추장 등 각각의 장들이 항아리에 담겨져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그런데 그 하찮게만 보였던 마을이 새삼 아름답게 다가온 건 몇 해 전이었다. 그날도 증조할머니댁에 가는 길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곳의 풍경을 감상하며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증조할머니댁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반기는 증조할머니는 93세라는 연세가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신 모습이었다. 경상도 특유의 빠른 말투로 내게 안부를 묻는 증조할머니의 말씀은 종종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내 손을 잡으며 무척이나 반가워하시는 증조할머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그날 내가 그곳에서 느낀 첫 번째 아름다움, 바로 ‘정’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멀리 살아서 1년에 몇 번밖에 못 보는 증조할머니지만 나를 기억해 주시고 그리워해 주신 그 ‘정’의 따뜻함을 그날 그곳에서 느꼈다.
증조할머니는 나를 산으로 가는 길 쪽의 작은 텃밭에 데리고 가셨다. 그곳에 가니 시원한 깻잎의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깻잎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흔히들 먹는 손바닥크기 정도의 초록 깻잎과 그것의 반 정도 크기의 노란 콩 깻잎, 낙엽 모양 같은 깻잎이 있었다. 증조할머니께서는 우리 증손녀 오면 먹이겠다고 미리 만들어 놓은 깻잎장아찌가 있다 하시고는 된장찌개랑 같이 먹자고 하셨다. 텃밭을 지나 향긋한 풀냄새가 만연한 산길은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굉장한 노을과 더불어 장관을 이루었다. 어릴 적 내가 그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날 증조할머니와의 산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증조할머니와 걸었던 산길은 위쪽으로 큰 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산에 올라가고 싶었는데 증조할머니께서 그 길을 올라가시기에는 힘이 드셔서 다음 날에 아빠와 함께 가기로 했다.
다음 날 해가 뜨고, 증조할머니의 깻잎장아찌로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먹고서는 아빠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정돈되지 않은 산길이었다. 아빠께서 종종 걸음을 멈추시는 까닭에 나도 아빠를 따라 멈춰 산을 둘러보았다. 산을 좋아하시는 아빠가 멈춰 서서 나무와 풀, 약초들을 둘러보실 때마다 “공기가 참 맑지 않니? 아빠는 이래서 산이 좋더라.”고 말씀하시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우셨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나도 점점 산의 향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느낀 두 번째 아름다움이었다. 밀양의 작은 시골마을의 공기는 티 없이 맑았지만 산 속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한결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에 비하면 훨씬 한가롭고 공기가 맑지만 그곳, 밀양의 증조할머니께서 계신 마을은 여기 이곳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깨끗하다. 같은 산일지라도 여기 이곳의 산과 내 마음속 그곳의 산은 비교할 수 없다. 흙길에 핀 이름 모를 꽃들, 푸르게 자란 풀들과 든든한 버팀목 같은 키 큰 나무들이 이루고 있는 그곳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가끔씩 답답하고 힘들 때, 증조할머니가 계신 그곳에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곳은 이미 내 마음속 동경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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