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입선 제1의 나의 집
  • 입상자명 : 고 아 라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우리 집은 시냇가에서 한참 벗어난 변두리 쪽으로, 조금만 나서면 산과 들과 논이 초록빛으로 끝없을 듯 펼쳐져 있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를 오던 때, 나의 기분은 매우 절망스러웠다. 전에 살던 아파트가 있는 곳은 친구들과 항상 약속을 잡던 시내와도 가까웠고, 문구점도 가까웠고, 서점도 가까웠고, 오락실도 가까웠고, 자주 가는 pc방도 셀 수 없이 많았는데, 이삿짐을 싣고 가는 이 차는 이미 시골 할머니댁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따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봐도 그 주변과는 한참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갈수록 점점 더 우울해졌었다.
그러나 곧, 오히려 아파트보다 이 변두리의 단독주택에 훨씬 더 애정을 갖게 될 줄이야 나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은 아파트에서 등하교하던 길보다 훨씬 길었다. 엄마, 아빠께서 나를 달래주시며 길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실 때엔, 어떻게 이 긴 길을 매일 걸으라는 걸까, 하고 막연히 걱정했었는데 실제로 첫날 그 긴 길을 걸어 등교하던 나는 지루함 없이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한걸음에 학교로 내달렸던 것이 나조차 신기했었다. 아마 길가의 향기로운 분홍 꽃들과 연속되어 살랑대는 초록 풀잎들이 나를 응원해 주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짐작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당시 느꼈던 마음 그대로다. 내내 콧등 위에 앉아 머무르던 풀잎 냄새가 그것을 의심할 수 없게 했다.
밤의 돌아오는 길은 낮의 길보다 훨씬 더 운치 있고, 나를 설레게 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이사한 지 한 달여가 지난 뒤,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끝마친 늦은 밤이었다. 차로 데리러 오시겠다는 아빠의 피곤함을 염려해 말려두고 선택한 일이었다. 매일 보던 나무와 흙, 그 위의 풀꽃들이 까만 어둠에 폭 쌓여, 가로등 불빛만으로 겨우 겨우 자신들의 모습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원하고 고요한 밤공기가 그 소리와 냄새는 더욱 짙게 만들었다. 지쳐 있던 나는 길 위에서 어느샌가 기운이 충전이라도 된 듯 힘이 불끈 불끈 솟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나는 꼭 나가야 할 일이 없어도 밤이면 종종 산책을 나갔다. 맘이 심란하거나 답답하거나 할 때면 늦은 밤의 숲길 산책은 내게 좋은 휴식처가 됐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때를 골라 기다리면서까지 밤 산책을 즐기게 되었다. 길게는 2시간~ 3시간이 넘도록 걸음을 했었는데, 꼭 정글을 탐험하는 만화 속의 주인공처럼 끓어오르는 모험심에서랄까, 이 길 저 길을 쏘다니며 나뭇가지 위에 앉은 먼지들조차 기억될 만큼 나는 그 시간 시간들을 아주 인상 깊게 보냈다. 길가를 따라 개구리 울음소리와 아직 잠들지 못한 소들의 울음소리, 집을 지키느라 밤이 늦도록 잠 못 이룬다는 강아지의 울음소리까지 모두가 내 숨과 함께 뛰었다. 발걸음 걸음 끝의 맑던 풀벌레 소리는 긴 여운과 함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내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그 후 나의 방 창문은 한시도 닫혀 본 적이 없다. 요즈음도 매일 밤, 난 창 너머로 풀벌레 소리와 함께 잠이 든다.
올해 가을 중, 나는 이사를 간다. 이사 오기 전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로. 친구들과 조금 더 어울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들뜨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앞으로 혼자 숲길을 산책하는 일은 다신 없을 거란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소릴 한다면 조금 우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종종 혼자 거니는 산책길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성숙한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은데, 앞으론 그런 여유도 없을 것만 같아 맘이 불편하다. 그런 아쉬움을 얘기하자면 정말 끝도 없다. pc방도, 노래방도 즐겁지만 매일 가라면 지겨워서 못 살 것이다. 그러나 숲은 크게 변하는 것 없이도 매일 매일 새로운 나를 볼 수 있게 한다.
결국 어느 곳보다도 숲은 좋은 놀이터인 것을,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은 생각에 왠지 조금 우쭐해지기도 한다. 가장 중대한 비밀을 손에 쥔 것처럼….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도, 지금보다 편리한 생활을 한다고 해도, 난 우리 집이 정말 많이 그리울 것이다. 늘 밟던 등굣길의 흙길은 어쩌면 더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새 집의 내 침대 머리맡엔 풀벌레 소리 가득한 창이 있을까, 개구리 소리 들려줄 논밭이 조금 있을까, 산책길 안내해 줄 산 능선 빛이 그곳에선 어떻게 반짝일까, 난 벌써부터 걱정되는 것이 많다.
꼭, 이사 가서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잊지 않고 종종 이 길들을 생각하고 또 걸어야지, 하고 약속 아닌 약속을 해본다. 가장 중대한 비밀을 나누어 준 숲은 언제까지나 제1의 나의 집일 것이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