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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나무가 되어
  • 입상자명 : 최도현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증조할머니께선 다음 생에는 나무가 되겠노라 하셨다. 모과나무가 심어진 마당에서 동생과 뛰어놀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항상 나뭇가지에 반쯤 가려진 이층 창문 너머로 우리를 지켜보며 웃어 주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할머니께선 다리가 불편하셨다. 초등학교가 방학을 하면 할머니 댁에 가서 지내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한 번쯤 119대원들을 보았다. 고통스러운 할머니의 표정이 익숙해질 정도로 할머니의 다리는 자주 아팠다. 고관절이 골절된 이후로 그 뼈가 제대로 붙질 못하고 헐거워져 어긋나서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상한 기구들을 덕지덕지 붙이시고도 채 열 걸음도 걷지를 못하셨다. 침대에 누워 대부분을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으시며 생활하셨는데 그런 할머니께서 유일하게 걸으시는 때는 휠체어에 앉으실 때였다. 외할머니나 다른 가족들의 부축으로 휠체어에 앉으시면 항상 창문 앞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마당을 둘러보시거나 모과나무를 쳐다보시며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어느 날 증조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창문 너머의 모과나무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도현아, 할머니는 다음에 태어나면 나무가 될란다-.” 항상 하시던 말씀이셨다. 내가 어떤 나무, 할머니? 하고 물으면 “몰러, 그냥 저기 저 뒷산에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한숨을 쉬셨다. 할머니 댁의 뒤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 할머니가 걸을 수 있으셨을 때 자주 거닐었던 곳이라고 외할머니께서 후에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지금은 울창한 산의 모습이 아니라 듬성듬성 마른 나무들만이 바람에 날리는 곳이 되어 버렸다. 조그마한 뒷산에 자라나던 푸르른 나무들은 예전에 트럭들에 뽑아다 실어 갔다고 한다. 분재로 쓰려고 가져갔다는데 궁금해서 가본 뒷산에는 드문드문 파인 구덩이에 자라나는 잡초들과 사람들에게 ‘미운’ 나무라서 아직 제 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자라나고 있는 나무들만이 있었다. 내가 그런 뒷산을 떠올리고 “할머니, 뒷산에 이제 나무들 별로 없어, 친구 많은 데로 가.” 하면서 지리산이니 백두산이니 유명한 산 이름을 읊어내고 있자면 할머니는 나의 이름을 나직하게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도현아, 저 뒷산이 얼마 푸르렀게, 그 산들만큼 울창하고 예뻤었어.” “…….” “근데 나무들 저거 다 뽑아가서 그래, 할머니는 나무가 많을 때 저 뒷산 예쁜 모습 봤는데 도현이도 저 산 예뻐진 모습 봐야지, 할머니가 저기 산 나무되면 산이 예뻐져요-.” 뒷산의 나무가 되실 거라던 할머니는 2년 전, 설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많이 우셨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조문객들도 모두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에 슬퍼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슬퍼하면서도 할머니가 꼭 나무가 되셨기를 기도했다. 정말 뒷산에 나무가 되셨다면 그렇다면 언젠가 예뻐진 산의 모습을 보며 증조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할머니께서 나무가 되셨다면 봄에는 새싹을 돋우시고 여름에는 잎사귀를 달아 울창한 그늘 드리우실 것이다. 가을에는 푸르던 잎사귀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고 겨울에는 소복이 쌓이는 눈을 맞으며 사람들에게 산을 보여 주실 것이다. 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나무를 뽑고 베어 가도 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무가 될 수 있다면 산은 언제나 아름답고 울창하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다음 생에는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가 되신 할머니의 옆에 자라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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