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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어느 평범했던 날의 이야기
  • 입상자명 : 김예진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2081년 8월 1일 꿈을 꿨다. 분명 밤이었으나 내 눈에는 너무나도 선명히 보였다. 나를 감싼 푸릇푸릇한 나뭇잎들과 울창한 수풀들이 얼마나 오랜만에 맡아보는지, 싱그러운 풀내음은 내 눈에 눈물이 맺히게 만들었다. 혹시나 풀을 상하게 할까 조심스럽게 발걸음 내딛으면서도, 기쁜 마음 감추지 못하고 어느새 어깨는 새벽별의 노래를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힘을 모아 가장 큰 나무 하나를 뽑아버렸다. 텅 비어버린 나무의 자리에는, 이젠 역겨울 정도로 익숙한 회색빛 건물이 들어섰다. 그들은 이제 막 고개 내민 어린 새싹들에게도 잔인했다. 말려야 했다. 삿대질을 하고 발길질을 해야 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땀까지 흘려가며 힘을 모아 겨우 ‘안 돼’ 하고 내뱉었다. 이미 꿈에서 깨버린 후였다. 눈을 떴다. 침대는 땀으로 흥건했다. 숨을 몰아쉬며 선반에 놓인 공기 캡슐을 삼켰다. 캡슐이 이젠 남지 않았다. 오늘 사야 할 것 같다. 다시 축축한 침대에 누워 신문을 보았다. [오늘의 뉴스 : 옛 초등학생의 일기장을 발견하다.] 궁금해서 자세히 읽어 보았다. 한 초등학생이 쓴 일기장에서 미래에는 공간이동이 자유로울 것이고, 신혼여행은 화성으로 갈 것이라고 적혀 있었단다. 웃음이 나왔다. 뭐, 어느 정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 화성으로 가는 패키지 신혼여행 상품이 요즘엔 최고 인기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시공간 이동기를 개발하는 단계에 있으니깐. 하지만 그것도 다 손발 쓰듯 돈 쓰는 부자들의 얘기다. 나 같은 빈민은, 화성은커녕 동네 밖으로도 여행 가기 힘드니까. 통행료도 워낙 비싼데다 여행을 가면 그 동네 공기를 또 사야 하는데, 값이 내 한 달 월급에 맞먹는다. 신문을 접고 일어나 간단하게 세수한 뒤 옷을 갈아입었다. 특별히 빨간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집 문을 열었다. 연결되어 있는 레일에 올라섰다. 삐끗하고 넘어질 뻔했다. 너무 어지러워서. 부지런히 발을 내딛으며 회사로 향했다. 아까 먹은 공기가 넘어올 것만 같았다. 안 돼. 그게 마지막이었어. 꾸역꾸역 넘기며 땅만 보고 걸었다.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다. 언제부터 땅이 회색이었던 거지. 왜 풀과 흙이 아닌 레일들이 땅을 덮어버린 걸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아마존 수풀들이 다 깎여버린 후부터였던가. 어느덧 길가의 잡초도, 항상 문제였던 길고양이와 비둘기도 보이지 않았다. 또 언제부터인가 땅에 묻은 쓰레기가 역류하면서 땅을 디딜 수조차 없게 되었다. 맞다, 그랬다. 그래서 이 회색빛 레일이 땅을 감싼 거였다. 밑을 내려다보면 한숨만 나와 차라리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고 하늘을 볼 수는 없었다. 그저 하늘을 둘러싼 빽빽한 회색 고층 건물들이 전부였다. 이제는 하늘색이 푸른색인지, 회색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다. 슬퍼진다. 원래 저 자리, 나무들의 자리였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회사에 도착했다. 스케이트를 가지런히 벗어두곤 문을 열었다. 맨발에 ‘바스락’ 하고 감기는 클로버의 감촉이 좋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먼저 와서 나무에 물을 주고 있던 정원사분이 똑같이 웃어주셨다. 유일하게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곳, 유일하게 땅이 땅색인 곳, 여기가 내 일터라 너무 행복하다. “오늘은 성산중학교에서 견학 오기로 했어요. 중학교 아이들이니까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아이고, 오늘은 그게 다인가요?” “음, 그러네요. 좀 수월하겠어요~.” 한쪽 구석에 놓인 내 책상에 털썩 앉으며 장부를 확인했다. 영양제가 얼마 남지 않아 신청서를 작성했다. 갑자기 레일 소리가 시끄러워지더니,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한 학교에서 왔다고 했지만 겨우 3O명 정도 되어 보였다. 저번 학교는 80명 가까이 왔었는데 아이들의 눈빛이 싱그러워 보였다. 얼른 일어나 선생님들께 먼저 인사하고, 아이들을 줄맞춰 앉도록 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산림복구팀의 관리부에서 일하고 있는 김예진입니다. 이곳은 마을에서 가장 큰 실내공원입니다. 특히 백두산의 광경을 재연하도록 노력했어요. 옛날에는, 커다란 산들과 수풀들 참 많았어요. 덕분에 공기 캡슐도 먹지 않아도 되었지요. 그 많던 푸른빛 산들이 늘 선물로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들이 그들을 베었어요. 그 자리를 빼앗고, 건물을 지었어요. 자리의 주인들을 쫓아냈죠. 그 결과, 레일이 생기고 캡슐이 생기고 땅의 색조차 변하고, 이렇게까지 되었네요. 하지만 여러분, 이게 끝이 아니에요. 앞으로 어떤 일이 더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하루라도 더 빨리 자리의 주인을 모셔 와야 해요. 그 일을 하고 있는 게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구요. 그리고 선생님은, 여러분이 자라서 같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고, 다시 되돌리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원 안을 뛰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수풀을 느껴 보고, 냄새 맡고, 밟아 보고 얼굴에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다행이야. 저 애들은 뭐가 소중하고 기쁜 건지 알고 있잖아. 또다시 행복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무사히 보냈다. 겨우 발걸음 떼어 공원 문을 닫았고, 어기적어기적 집에 도착했다. 힘이 빠진다. 물 한 잔 들이키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침대에 깔려 있던 신문을 치우며 문득 생각했다. 이 일기가 과거로 간다면……. 우선 나무 좀 그만 베러 가라고 써야 하고, 산 뚫어 터널 만드는 건 무슨 해괴한 짓거리냐고 따져야 하고, 아 됐다. 그냥 뭐가 진짜 주인인지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땅은, 하늘은, 산은 무슨 색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때, 주인 있는 자리에 자꾸 이상한 짓 하는 것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아무렴,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말 안 해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결국, 가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졸립다. 잠이 쏟아진다. 부디 좋은 꿈꾸며 즐겁게 잠들기를. 예를 들면, 아까 꽃 한 송이 몰래 가져가던 아이의 집 앞에 화사한 정원이 피어나는, 그런 예쁜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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